오는 29일까지 서울 갤러리 KTA에서 열리는 조엘 음파두의 개인전에 전시된 ‘아이덴티티’.
오는 29일까지 서울 갤러리 KTA에서 열리는 조엘 음파두의 개인전에 전시된 ‘아이덴티티’.
‘카메룬 국민화가’ 조엘 음파두(Joel Mpahdooh·63)는 아프리카의 전통 화풍에 프랑스 스타일의 일러스트를 가미한 ‘그래피티 아트(낙서화)’의 선구자로 꼽힌다. 미국 천재 화가 장 미셸 바스키아와 키스 해링보다 한 발 앞서 낙서화를 개척한 그는 아프리카의 독특한 기하학적 조형성을 평면회화로 승화했다. 프랑스 파리에서 공부하며 선진 미술문화를 접한 그는 미국의 팝아트는 물론이고 유럽의 신표현주의까지 아우르며 아프리카 현대미술의 신경향을 개척했다는 평가를 받고 있다.

음파두의 주요 작품을 소개하는 국내 첫 개인전이 지난 10일 서울 인사동 갤러리 KTA에서 개막했다. ‘깔깔깔! 아프리카미술-색깔, 빛깔, 성깔’을 주제로 한 이번 전시에는 남녀의 애틋한 사랑과 달콤한 연애감정, 현대인의 생활풍속을 낙서화풍으로 그린 2010년 이후 근작 50여 점이 걸렸다.

이날 전시장을 찾은 음파두는 “좀 더 좋은 작품을 그리기 위해 아직도 아트사냥꾼처럼 활동한다”며 “지난 40년 세월 동안 다양한 미술 장르를 섭렵하며 예술의 새로운 가치를 찾았다”고 말했다. 미술이 일상의 작은 소망에서 출발해 많은 사람에게 희망과 용기를 건네준다는 얘기다.

실제로 그는 전통을 중시하면서도 거기에 너무 집착하지는 않는다. 인간과 아프리카 지역성을 결합한 ‘휴머니티(humanity)’ 예술철학에 기반을 둔 새로운 미술 생태계를 만들기 위해서다. 격정적인 사랑을 나누는 연인을 비롯해 가족과 현대 풍속을 다룬 그의 작품들은 일상의 행복을 그냥 큰 그림으로 그려놓았다. 누구나 갖고 싶어 하는 자동차나 기타, 피아노를 살짝 끼워넣어 미래에 대한 희망의 끈도 놓지 않았다. 남녀의 사랑을 유난히 강조한 일부 작품 속 사람들의 눈빛에서는 뭔지 모를 맑은 꿈과 활력을 느낄 수 있다. 역동적인 색채 앙상블을 통해 감정을 숨기거나 에둘러 표현하지 않고 원초적으로 드러낸다. 뚱뚱한 입술과 유난히 길게 늘어진 목, 검은 곱슬머리 등에선 아프리카 특유의 유머러스한 감상을 읽을 수 있다.

낙서화의 형식을 빌린 그의 독창적인 표현기법도 유별나고 특이하다. 작가는 먼저 알루미늄판에 아크릴 물감과 오일 크레용을 두껍게 칠한다. 다시 이를 예리한 면도날이나 송곳으로 긁어내면 선마다 은빛 알루미늄 바탕이 드러난다. 이렇게 ‘빛’을 발견하는 스크래치 기법은 그의 종교적 신념, 나아가 아프리카의 복잡다단한 현실과도 연결된다.

‘어둠 속을 헤매는 백성이 큰 빛을 보게 될 것입니다. 캄캄한 땅에 사는 사람들에게 빛이 미쳐올 것입니다(이사야 9장 1절)’라는 성경 구절을 자주 인용하는 그는 “본디 아프리카의 근원은 빛났고, 단단했고, 두려움이 없었기에 절망에 빠진 적이 없었다”고 강조했다. 박선우 갤러리 KTA 대표는 “국내에는 처음으로 소개되는 작가여서 생소할 수도 있지만, 국적과 문화가 혼종화된 시대에서 음파두의 낙서 같은 작품은 낯설지 않은 친근함으로 다가올 것”이라고 소개했다.

또 다른 전시장에서는 세네갈 인기 작가 은도에 두츠와 탄자니아의 헨드릭 릴링카 작품도 만날 수 있다. 헨드릭은 아프리카 작가임에도 불구하고, 한국의 초등학교 3, 5학년 미술교과서에 소개된 작가여서 더욱 눈길을 끈다. 박 대표는 “이번 전시기획은 인사동 문화거리 살리기 일환으로 아프리카 미술을 통한 문화예술 마니아층을 인사동으로 재영입하기 위한 프로젝트”라며 “아프리카 미술관과 한국관광협회 중앙회와 공동기획했다”고 밝혔다. 전시는 오는 29일까지.

김경갑 기자 kkk10@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