런던서만 수십명 짐싸…"금융위기 당시 분위기 연상케 해"
美 월스트리트에도 감원 칼바람…자리 지킨 사람들도 불안
도이체방크 정리해고에 유럽·아시아 금융가 '뒤숭숭'
2019.7.8' />

"해고됐습니다.

이제 어디로 가야 할까요?"
영국 런던 소재 도이체방크에서 해고된 한 직원은 근처 술집으로 발길을 옮기며 침울한 표정으로 이렇게 말했다.

주식 매매 부서에서 일해온 그는 8일(현지시간) 오전 회사로부터 해고 통보를 받았다.

경영 부진에 따라 1만8천여명을 정리해고하는 강도 높은 구조조정 계획을 발표한 도이체방크가 이날 유럽·아시아 지점을 중심으로 감원 작업에 본격적으로 착수하면서 글로벌 금융가가 온종일 술렁였다.

8천여명이 근무하는 런던의 도이체방크 투자은행 본부에선 일부 직원들이 오전에 회사 인사 담당자와 면담을 하고선 곧바로 책상에서 소지품을 챙겨 사무실을 떠나는 장면이 목격됐다.

정보통신(IT) 부서에서 2년 넘게 근무했다는 한 직원은 "오늘 아침 해고 통보를 받았다.

매우 짧은 면담이 있었고 그것으로 끝이었다"고 말했다.

역시 해고 통보를 받은 다른 직원은 인사 담당자와 면담을 기다리던 당시 상황을 묘사하면서 "꼭 병원 대기실 같았다"고 했다.

한 사람 한 사람 이름이 호명돼 나가고 일부는 눈물을 흘리기도 했다고 그는 전했다.

도이체방크 정리해고에 유럽·아시아 금융가 '뒤숭숭'
이날 회사 주변 술집은 동료들과 작별 인사를 나누려는 해직자들로 붐볐고, 지점 건물 밖에는 해직자들이 부른 택시들이 길게 줄을 서는 진풍경도 벌어졌다.

영국 일간 더타임스는 이날 런던에서만 도이체방크 직원 수십 명이 짐을 쌌다면서 이는 2008년 미국 투자은행 리먼브러더스의 파산으로 촉발된 금융위기로 수천 명이 해고된 당시 상황을 연상케 한다고 보도했다.

런던 본부의 전체 감원 규모는 수백명에 이를 것으로 예상된다.

정리해고의 '칼바람'은 호주·인도·홍콩 등 아시아 지역의 도이체방크 지점에도 몰아쳤다.

홍콩 지점에서 해고된 한 주식 트레이더는 회사 분위기가 "매우 우울하다"며 뒤숭숭한 현지 상황을 전했다.

일부 직원들은 회사 로고가 찍힌 봉투를 손에 쥐고 사무실을 떠났다.

건물 밖 도이체방크 간판을 배경으로 마지막 기념사진을 찍고 서로 포옹한 뒤 택시를 불러 떠나는 직원들의 모습도 포착됐다.

해고 통보를 받은 또 다른 직원은 로이터통신에 "혹시 나를 위한 일자리가 있다면 알려달라. 다만, 질문은 하지 말아달라"고 부탁했다.

한 달 치 월급만 쥐고 회사에서 나왔다는 인도 벵갈루루 지점의 한 직원은 "매우 절망적인 상황"이라면서 "홑벌이를 하거나 갚아야 할 빚이 있는 직원들이 특히 그렇다"고 하소연했다.

도이체방크 정리해고에 유럽·아시아 금융가 '뒤숭숭'
글로벌 금융의 '본산'으로 통하는 미국 뉴욕 월스트리트의 분위기도 어수선하다.

이날 오전 월스트리트에 있는 도이체방크 지점에선 직원 수백명이 카페테리아로 소집됐고, 인사 담당자와의 일대일 면담을 거쳐 보상 조건 등에 대한 설명을 듣고는 짐을 쌌다.

다행히 이번 정리해고 폭풍에서 비켜선 직원들도 미래가 불안하기는 마찬가지다.

싱가포르의 한 은행원은 "우리가 가장 궁금한 것은 시장이 원하는 것을 제공하지 못한다면 여기에서 어디로 가야 하느냐라는 것"이라면서 "고객들이 우리와 함께할까 아니면 모든 것이 끝장날까"라고 반문했다.

/연합뉴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