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러스트=조영남 기자 jopen@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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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틴 루터 킹 목사의 전기 작가 데이비드 개로우에 의해 새로 드러난 이야기들을 우리는 어떻게 이해할 수 있을까. 그는 포르노 같은 묘사를 곁들이면서 킹 목사가 40명이 넘는 미혼 및 기혼 여성들과 ‘밀회’를 가졌다고 폭로한다. 이해하기도 용서하기도 어려운 대목이 나온다. 심지어 킹 목사가 동료 목사가 여자를 강간할 때 옆에서 웃고 충고(?)했다는 믿기 어려운 이야기도 나온다. 그때 킹 목사는 술에 취해 있었다.

개로우의 이 기사는 영국 잡지 스탠드포인트가 발행해야 했다. 왜냐하면 미국 출판사들이 이 기사의 게재를 거절했기 때문이다. 그 폭로 내용은 1960년대 중반 민권운동의 정점에 있는 킹 목사에 대해 받아들이기 힘든 이야기를 한다. 킹 목사는 순교했고 성스럽게 기억되고 있으며, 그의 이름을 딴 도로와 학교는 셀 수 없이 많다.

세상의 많은 일을 겪은 어른들은 어쩌면 그 시대를 이해할 수 있을지도 모른다. 아이들이나 이상주의자가 아니기 때문이다. 하지만 우리는 이제 마틴 루터 킹 주니어에 대해 모순되고 화해할 수 없는 두 가지 생각을 갖고 살게 될지도 모른다.

민권운동을 취재하는 기자 등 킹과 가까운 사람들은 그의 이런 행동과 음주에 대해 어느 정도 알고 있었을지도 모른다. 구체적으로는 아니더라도 말이다. 개로우는 그가 여성들과 집단 성관계를 맺었다는 이야기까지 언급하고 있다.

기자들은 그때 소문을 들었다. 그들은 이에 대해 이야기를 나누기도 하고 때로는 관련된 농담을 하기도 했다. 그러나 그들은 공인의 사생활에 대해 함구했다. 지금과는 다른 규칙들이 적용되던 시기였기 때문이다. 그런 일에 대해서는 절대 기사를 쓰지 않았다. 기자들은 프랭클린 루스벨트의 휠체어에 대해서도, 조지프 매카시의 음주나 존 케네디의 성생활에 대해서도 쓰지 않았다.

킹 목사는 신도들에게 설교할 때 종종 자신을 죄인이라고 말했다. 보통 설교자들과는 다른 점이 있었다. 돌이켜보니 죄인이라는 것은 이런 일을 가리키는 것이었다고 생각된다. 그는 자신이 결점투성이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아마도 킹 목사의 양심은 소설가 그레이엄 그린의 글에서 이해될 수도 있다. 위대한 성인들은 끔찍한 죄악으로 구원의 길을 찾는다는 것이다. 일부 정신과적 추측에 따르면 음주와 섹스는 조울증의 결과였다.

대중은 그가 미국을 더 좋게 변화시키고, 그 목적을 위해 자신을 희생했다는 것을 알고 있다. 총에 맞기 전날 밤 그는 장엄한 왕이었고 예언자였다. 일부 역사학자들과 킹 목사를 옹호하는 사람들은 개로우의 증거가 나쁜 의도를 갖고 있고 인종차별적이라고 주장하고 있다. 1960년대 이후 많은 사람은 J 에드거 후버의 연방수사국(FBI)이 킹 목사의 호텔 방을 도청했고, 그에 대한 믿음을 떨어뜨리기 위해 여러 매체에 섹스 테이프를 제공했다는 사실을 알고 있다.

그러나 개로우의 정보는 확실한 것으로 보인다. 그는 널리 존경받는 역사가이자 퓰리처상을 받은 전기 작가다. 그의 기사에 실린 자료는 (가짜 FBI 파일에서 종종 발견되는) 소문에 근거한 것이 아니라 2027년까지 봉인된 FBI의 오디오 테이프가 새로 공개되면서 나온 요약본에 근거한 것이다. 1977년 법무부 전문직무관실 보고서는 이 녹취록의 정확성을 확인했다.

개로우는 자칭 민주사회주의자로 좌파다. 그는 항상 킹 목사를 숭배해왔다. 남은 의심은 테이프가 공개되는 8년 뒤 정확하게 풀릴 것이다. 이때 국민은 테이프에 담긴 킹 목사의 낯익은 목소리를 듣게 될 것이다. 개로우는 그 충격이 상당할 것이라고 예측한다.

그러나 나는 어떤 경우에도 킹 목사와 같은 도덕적 지도자들의 부재는 재앙이라고 믿는다. 영웅이 없는 나라는 야만적이거나 끔찍할 정도로 옹졸해지고, 둔하고 비열해진다. 오늘날 우리가 가지고 있는 것은 정치의 무자비한 자기 중요성으로 인해 더욱 더 심해진 야만성과 괴팍함이다. 우리는 영웅들을 파괴하는 방탕한 태도를 보여왔다.

나는 우리가 킹 목사를 잃을 수 있다고는 생각하지 않는다. 그의 행동은 미국 역사상 보기 드문 훌륭한 것이었다. 마틴 루터 킹의 사생활은 복잡했고, 또 그의 행동 중 일부는 정말 불쾌했을 수 있다.

하지만 그가 자신의 신념을 위해 목숨을 바쳤다는 사실은 달라지지 않는다. 자신이 어떻게 될 거라는 것을 알면서도 그는 자신을 희생했다. 나라를 위해, 흑인들을 위해 또 백인들을 위해. 그는 여전히 미국의 관용과 은총을 받을 만하다고 생각한다.

원제:A Reckoning With Martin Luther King

정리=서욱진 기자 venture@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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