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6·25 전사자 유가족들에게 이렇게 해도 되는 겁니까.”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25일 열린 6·25전쟁 제69주년 행사에서 6·25 국가유공자가 공연을 보던 중 눈물을 닦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서울 장충체육관에서 25일 열린 6·25전쟁 제69주년 행사에서 6·25 국가유공자가 공연을 보던 중 눈물을 닦고 있다. /신경훈 기자 khshin@hankyung.com
25일 오전 9시께 서울 장충체육관 1층. 이날 오전 10시로 예정된 6·25전쟁 69주년 행사가 열리기 1시간 전부터 장내는 소란스러웠다. 6·25 참전 유공자 및 유가족 중 일부가 이날 행사 주최 기관인 국가보훈처 측에 거세게 항의했다. 박승호 대한민국전몰군경유족회 서울특별시지부장은 “무대가 잘 보이는 1층 좋은 자리는 다 비워 놓고 유가족들은 2층으로 올라가라고 한다”며 “누구를 위한 행사인지 모르겠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6·25 당시 종군기자로 활동했다는 지갑종 유엔한국참전국협회 회장(92)은 맨 앞자리 좌석이 4·19혁명과 5·18 민주화운동 단체장 몫으로 채워진 것을 가리키며 “이분들도 중요한 건 맞지만 오늘이 6·25 기념일이라는 걸 감안하면 우선순위가 바뀐 것 같다”고 씁쓸해했다.

이날 행사에 초청받은 예비역 장성 210여 명 대다수가 불참하는 일도 벌어졌다. 익명을 요구한 한 예비역 장성은 기자와의 전화통화에서 “초대는 받았지만 현 정부에 대한 보이콧 차원에서 가지 않았다”고 했다. 행사장을 찾은 예비역 장성이 10여 명에 그치자 객석 뒤에서 행사 진행을 돕던 보훈처 직원 수십여 명이 급히 앞으로 이동해 빈자리를 메우는 해프닝도 벌어졌다. 김종환 대한민국6·25참전유공자회 서울특별시지부 감사(88)는 “참전용사만 510명을 인솔해서 왔는데 구석진 자리가 아니면 2층에 앉으라고 한다”며 “이런 촌극이 따로 없다”고 했다.

크고 작은 소란 끝에 행사는 예정대로 시작됐지만 참전 유공자와 유가족들의 표정은 시종일관 어두웠다. 연사로 나선 이낙연 국무총리가 남북한 평화와 관련된 내용을 언급할 때에는 박수 소리도 거의 들리지 않았다. 이경수 서울 개화산전투 및 다부동전투 구국용사회 부회장 겸 서울지부장(90)은 “이번 북한 어선 귀순 사건에서도 여실히 드러났지만 북한과의 대화만 강조한 나머지 군이 ‘기본’을 잊고 있는 것 같아 마음이 착잡하다”고 했다.

참전 유공자에 대한 배려가 아쉽다는 지적도 나왔다. 6·25 참전용사인 최무열 씨(88)는 “행사가 해가 갈수록 격이 떨어지고 있다고 느낀다”며 “행사에 불만이 있어 점점 참석하지 않는 유공자가 많아지고 있다”고 털어놨다.

임락근/이미아 기자 rklim@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