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해찬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9일 경제 부처 장관들에게 확장적인 재정 운용을 당부했다. 같은 당 조정식 정책위원회 의장이 전날 내년도 예산안을 최소 514조원 규모로 짤 것을 주장한 데 이은 여당의 ‘돈 풀기’ 주문이다. 문재인 대통령이 지난달 국가재정전략회의에서 “국가채무비율 40%에 집착하지 않았으면 한다”고 한 뒤 여당 압박이 갈수록 거세지고 있다.

이 대표는 이날 서울 여의도 한 식당에서 경제 부처 장관과 오찬하며 홍남기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에게 “국내총생산(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하향 조정돼 여지가 생겼으니 그런 것을 감안해 재정 운용을 해야 한다”고 말했다. 한국은행이 최근 국민계정 통계 기준연도를 2010년에서 2015년으로 개편하며 지난해 GDP 대비 국가채무비율이 38.2%에서 35.9%로 내려갔다. 이 대표는 그만큼 재정건전성 여지가 생겼으니 확장 재정을 해야 한다는 의견을 밝힌 것이다. 이 자리에는 홍 부총리 외에 박영선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성윤모 산업통상자원부 장관, 유영민 과학기술정보통신부 장관, 이재갑 고용노동부 장관 등도 참석했다.

조 의장은 지난 18일 원내대책회의에서 “내년도 예산 역시 올해 증가율 9.5%를 감안한 수준에서 편성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정부 각 부처가 지난 14일 올해 예산 대비 6.2% 늘어난 총 498조원 규모의 내년도 지출 계획안을 제출한 데 대해 이보다 증가율을 더 높게 가져가라고 주문한 것이다. 올해 예산 469조원에 9.5% 증가율을 적용하면 514조원 규모가 된다. 정부 부처 요구안보다 16조원 많은 규모다.

17일에는 박광온 민주당 최고위원이 정부가 제출한 내년도 예산 요구액에 대해 “구두쇠 재정으로는 양극화와 고령화 문제를 해소할 수 없다”며 역시 확장 재정을 주문했다.

기재부는 연이은 여당 압박에 난감해하는 분위기다. 기재부 관계자는 “작년엔 물밑에서 여당과 예산 증액 논의를 마친 뒤 발표했는데 올해는 공식 메시지를 통한 압박이 세졌다”며 “부담을 느낄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여당 압박에는 기재부에 대한 불신이 자리잡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올해 추경안 편성 과정에서도 여당은 10조원 안팎 규모를 요구했지만, 기재부는 이를 거부하고 6조7000억원 규모로 짠 것으로 알려졌다. 일각에서는 기재부가 처음에는 4조원 규모로 제출하려 했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한 야당 의원은 “여당이 공개적인 여론 조성을 통해 기재부의 운신 폭을 좁히려는 것 같다”고 말했다.

임도원/김우섭 기자 van7691@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