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일 반도체기업 인피니언테크놀로지가 미국 반도체업체인 사이프러스반도체를 인수한다.

인피니언은 3일(현지시간) 사이프러스 부채를 포함한 기업 가치를 90억유로(약 11조8990억원)로 평가하고 사이프러스를 인수하는 계약을 맺었다고 발표했다. 주당 인수금액은 23.85달러이며, 이는 4월 15일부터 지난달 28일까지 30일간 가중 평균 가격에 프리미엄 46%를 더한 것이라고 인피니언은 설명했다. 사이프러스는 지난달 31일 주당 17.82달러로 장을 마감해 시가총액 65억달러(약 7조6880억원)를 기록했다. 인피니언은 미국 당국 승인 등의 과정을 감안하면 이르면 올해 안에 딜이 끝날 것으로 기대했다.
인피니언은 전력 반도체 분야에서 세계 시장의 18%를, 차량용 반도체 분야에선 11.2%를 차지하고 있다. 시가총액은 지난달 31일 기준 182억유로(약 24조478억원) 규모다. 사이프러스는 플래시메모리, 마이크로컨트롤러, 전력 반도체 등을 설계·제조한다. 최근 사물인터넷(IoT)과 차량용 반도체 사업을 키우고 있다. 인피니언은 사이프러스를 인수하면 세계 8위 칩 제조업체가 된다고 밝혔다. 지금은 15위권 정도로 평가받고 있다.

라인하르트 플로스 인피니언 최고경영자(CEO)는 “이번 인수를 통해 차량·산업용 반도체 사업과 IoT 분야 등으로 사업을 넓히게 됐다”며 “인피니언이 가진 전력반도체와 센서 기술에다 사이프러스의 주요 사업 분야인 마이크로컨트롤러 등을 활용해 전기 구동장비 등 고성장 분야를 공략할 것”이라고 밝혔다. 인피니언은 이번 인수로 인한 시너지 효과를 2022년까지 연간 1억8000만유로(약 2380억원)로 자체 평가했다.

미·중 무역분쟁으로 인한 타격을 줄이기 위해 시장 다각화에 나선 것이라는 분석도 나왔다. 블룸버그통신에 따르면 인피니언은 그간 전체 매출 중 4분의 1가량을 중국 시장이 차지할 정도로 중국 의존도가 높았다. 최근 중국 경기가 둔화된 데다 정보기술(IT)기업을 두고 미·중 당국 간 줄다리기가 계속되면서 매출에 타격을 입은 것으로 알려졌다. 파이낸셜타임스(FT)는 이번 인수합병(M&A) 관계자를 인용해 “인피니언이 합병을 추진한 것은 최근 무역 조건이 악화되면서 성장 동력이 떨어졌다고 판단했기 때문”이라고 보도했다.

인피니언은 이번 인수를 통해 북미 시장 등의 비중을 키운다는 계획이다. 인피니언은 “사이프러스는 미국 실리콘밸리에 연구개발(R&D)센터를 두고 있다”며 “이를 기지로 삼아 북미 시장을 비롯해 전략적 주요 시장인 일본 등에서 점유율을 늘릴 것”이라고 밝혔다.

최근 세계 반도체업계에선 합병이 활발히 일어나고 있다. 비용을 절감하고 신시장을 공략하기 위해서다. 지난주엔 네덜란드 반도체기업 NXP가 마벨의 무선랜(와이파이) 사업을 17억6000만달러(약 2조810억원)에 인수했다.

패트릭 무어헤드 무어인사이트앤드스트래티지 대표는 “최근 잇따른 반도체업계 합병은 반도체칩 집적용량에 대비해 칩 가격이 18개월마다 절반으로 줄어든다는 ‘무어의 법칙’에 의한 것”이라며 “업계 기술 발전이 빠르다 보니 서로 다른 칩 간 기능 통합이 빠르게 이뤄지고 이에 기업 간 합병 필요도 늘고 있다”고 설명했다.

하지만 미국 당국이 인수를 허용할지는 미지수라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인피니언은 2017년 발광다이오드(LED) 조명 등을 만드는 미국 기업 크리를 인수하려 했으나 미국 당국이 국가 안보 침해가 우려된다며 반대해 무산됐다. 블룸버그통신은 “인피니언이 사이프러스를 인수하더라도 양사 간 통합 과정이 힘들 수 있다”고 분석했다.

선한결 기자 alway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