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의 창] 사전조율 못하면 '모기장 밖' 신세
주요 20개국(G20) 정상회의가 다음달 28~29일 일본 오사카에서 열리고, 나루히토(德仁) 천황(일왕) 즉위식은 오는 10월 도쿄에서 예정돼 있다. 일본 행사에 뭐 그리 대수냐고 반문할 수 있겠지만, 이 두 행사는 문재인 대통령과 아베 신조 총리가 자연스럽게 정상회담 장면을 연출하며 양국 관계를 개선할 수 있는 드문 기회다. 두 일정이 중요한 이유는 “당신이 먼저 숙이고 들어오라”는 명분 싸움을 피하는 계기가 될 수 있기 때문이다.

한·일관계 악화는 일본에 비해 한국에 더 큰 경제적 손실을 가져올 수 있다. 한국인은 한·일관계가 나빠도 일본에 많이 가고 일본 상품도 많이 찾지만, 일본인은 한·일관계가 냉각되면 한국에 가기를 주저하고 한국 상품도 외면한다. 바꿔 말해 우리가 먼저 나서 정상 간 대화로 풀어가는 관계개선 전략은 일본인들의 한국 찾기와 한류 선호를 유도해 경제 살리기에 도움이 된다는 뜻이다.

한국이 곧잘 쓰는 ‘담판 짓기’식 일처리를 일본은 부담스러워하고 꺼린다. 어떤 안건에 대한 일본의 일처리 방식은, 우선 그 안건을 의제(議題)로 올려 서로 정보를 공유하고, 그 후 실무자 간에 조심스럽게 사전조율을 한 다음, 마지막으로 전체 회의에서 “이의 없음”이라는 심의 과정을 거쳐야 추진되는 방식이다. 이런 방식은 시간도 걸리고 답답하게 느껴질 수 있으나 내부 분열 방지에는 효과가 크다. 누군가가 ‘꼬장’을 부리는 돌출 행동이 나타난다 하더라도 전체의 공기(분위기)가 이를 압도한다. 특히 국익을 앞에 두면 개인의 돌출 행동은 극히 자제된다.

일본이 차려놓을 G20 회의 밥상은 우리 입맛에는 맞지 않을 수 있다. 실제로 아직 한국과의 정상회담은 예정에 없다. 지금과 같은 분위기라면 G20 회의에서 일본은 한국을 ‘무시’하는 투로 대접할 공산이 크다. 10월 천황 즉위식에서도 한국 대표단을 구석 자리에 배치해 자존심을 상하게 할 수도 있다. 일본이 한국을 냉대하지 못하게 하면서 정치·외교 위상을 높이기 위해서는 지속적인 사전조율이 있어야 한다.

일본 및 세계 정세는 한국의 민주화 논리 정서대로 돌아가지는 않는다. 하코다 데쓰야는 지난 12일자 아사히신문 기명 사설에서 “한국의 ‘정의(正義)’는 융통성이 통하기 어렵다”며 “인맥이나 지식을 구사할 수 없는 대일(對日) 외교가 자승자박(自繩自縛)에 빠져 있다”고 짚었다. 하코다의 지적은 대일 외교에서 인맥이나 지식이 작동하지 못하는 사전조율 부재에 대한 우려이기도 하다.

어떤 일을 처리할 때 한국과 일본의 감각은 크게 다르다. 한국은 “한 달이면 충분한 것 아니냐. 서둘러 하면 되지. 왜 못하겠냐?”는 자세고, 일본은 “한 달밖에 남지 않아 시간이 부족하다”는 태도다. 일본과의 일처리를 성사시키기 위해서는 반드시 거쳐야 할 중요한 과정이 ‘사전조율(일본어로 네마와시)’인데, 한국은 이에 대한 인식이 턱없이 부족하다. 한·일 정상 간 대화를 이루는 데도 한국이 생각하는 이상의 사전조율 시간을 확보할 필요가 있다.

‘모기장 밖’이란 일본어가 있다. 모기장 안에 함께 끼지 못하고 밖으로 밀려남을 비유하는 말이다. 한국어로 하면 ‘개밥에 도토리’ 정도가 되지 않을까 싶다. 아베 총리는 G20 회의에서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 시진핑 중국 국가주석, 블라디미르 푸틴 러시아 대통령, 나아가 유럽 주요국 정상과의 회담을 준비하며 일본의 입지를 높이려 하고 있다. 한국이 자칫 ‘모기장 밖’ 신세가 되지 않을까 우려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