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 제가 광고를 찍습니다. 그것도 대기업 광고요. 저한테 이런 일이 생기다니….”

유튜브에도 ‘이 과장’이 산다. ‘이 과장’은 계정 이름이다. 5개월 전 한 중소기업에 다니는 이 과장이 만들었다. 회사 내부 이야기부터 거래처와의 관계까지 중소기업 직장인의 일상을 익명으로 동영상에 담았다. 회사 이름은 공개하지 않았다. 처음엔 ‘이런 걸 누가 보나’ 싶은 동영상들이었다. 하지만 시간이 지나 입소문을 타고 공감 댓글이 많아지며 50만 뷰 가까운 클릭수를 받은 동영상도 나왔다.

인기가 높아지자 회사 동료들도 그가 제작한 동영상을 보게 됐다. 이 과장은 유튜브가 예상밖에 인기를 끌며 최근 사표를 냈다. 그는 회사를 떠나는 날의 일상도 동영상으로 만들어 올렸다. 지금은 더이상 직장에 다니지 않는다. 최근에는 이 과장을 눈여겨본 네이버 관계자가 연락해 그를 주인공으로 하는 광고 촬영을 제안했다고 한다. 이 얘기도 그는 유튜브에 올렸다. 이 과장은 지금 유튜버로 살고 있다.
[김과장 & 이대리] 직장인, 유튜버가 되다
“대기업·중소기업·공무원을 알려주마”

유튜브에 자신의 회사 생활을 동영상으로 제작해 올리는 김과장 이대리가 늘고 있다. 대개 ‘대기업을 알려주마’ ‘자영업자의 현실은’ ‘공무원의 진짜 연봉은’ 등의 제목을 달고 데뷔한다. 공통점이 있다. 동영상은 동영상인데, 대부분 얼굴이 등장하지 않는다. ‘이 과장’ 유튜브가 인기를 끈 비결은 얼굴을 드러낸 채 ‘대놓고’ 말하는 데 있었다.

삼성전자 직원으로 추정되는 한 유튜버는 대기업 직장인의 삶에 대해 얘기한다. 자신의 출퇴근길 블랙박스 영상을 편집해 올리고, 하고 싶은 이야기를 하는 식이다. 동영상엔 회사의 일처리 방식이나 사내 ‘라인(인맥)’ 등에 관한 자신의 생각이나 경험을 솔직하게 담고 있다.

‘30대 자영업자 이야기’라는 유튜버는 치킨집, 삼겹살집, 호프집 등의 창업 관련 내용이나 자영업자의 사연을 모아 전달한다. 모든 영상은 얼굴은 보이지 않은 채 식재료를 손질하는 모습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1인 카페 창업’ ‘프랜차이즈 창업’ ‘건물주 이야기’ ‘100억원 매출 프랜차이즈 대표 성공기’ 등 자영업에 뛰어든 사람들의 역경이나 성공 스토리를 전하고 있다.

또 다른 유튜버 ‘효자손’은 공무원이다. 그는 동영상 속에서 가면을 쓰고 있다. 얼굴 전체를 덮는 분홍색 마스크와 선글라스를 쓰고 공무원의 일상을 전한다. 최근엔 강원도 산불 발생 당시 공무원 사회의 일상이 어땠는지를 담은 동영상을 올렸다.

얼굴을 드러내 놓고 하는 유튜버도 있다. 이들은 막 퇴직한 직장인이 대부분이다. 삼성전자, LG전자 등 대형 전자업체뿐 아니라 구글, 아마존, 페이스북, 에어비앤비 등 미국 실리콘밸리에서 일한 경험을 전달하는 경우가 많다. 대학생 등 취업준비생들에게 도움이 되기 때문에 조회수가 수백만 뷰인 영상도 수두룩하다.

기업 실상 알고싶은 취준생에게도 도움

스마트폰 앱(응용프로그램) 분석 업체 와이즈앱에 따르면 한국인이 가장 긴 시간 사용하는 앱은 유튜브다. 월 317억 시간(지난해 11월 기준)에 달한다. 가장 많이 사용하는 플랫폼인 만큼 광고 수익도 많다.

직장인 유튜버도 크게 다를 바 없다. 동영상 재생에 따른 광고수입을 장기적으로 염두에 두고 활동한다. 유튜브는 구독자와 동영상 재생 시간이 일정 수준을 웃도는 유튜버들의 영상에 광고를 붙이고 일정액을 지급한다. 이 과장도 지난 3월 유튜브 수익으로 448달러(약 53만원)를 받았다고 동영상을 통해 공개했다. 당장 큰돈은 아니지만, 동영상 개수가 쌓이고 인기가 높아지면 이 금액은 크게 불어난다. ‘이 과장’은 왜 유튜브를 하는지 자문자답한 동영상에서 “당연히 돈을 보고 하지만 2~3년 뒤에 수익이 나도 상관없다”고 했다.

유튜브 수익으로 생계에 적지 않은 도움을 받는 사람들도 있다. 외국계 정보기술(IT) 회사에서 과장으로 일했던 김모씨(42)는 최근 구조조정으로 회사를 떠났다. 그는 1년 전 어린 아들 덕에 시작한 장난감 소개 유튜브 동영상으로 월 100만원 정도의 수입을 올리고 있다. 직장을 그만둔 상황에서 생계에 보탬이 될 수 있어 다행스러워하고 있다. 김씨는 “아들이 장난감 총을 어떻게 쓰는지 모르겠다며 집 한구석에 방치해둔 걸 본 게 계기가 됐다”며 “요새 애들은 장난감 사용법을 배우기 위해 유튜브를 본다는 얘기를 듣고 관련 동영상을 찍어 올리기 시작했다”고 말했다.

‘퇴사해보니 세상이 만만치 않더라’는 경험담을 올리는 유튜버도 있다. 한 유튜버는 “여행이 좋아 직장을 때려치우고 캠핑장을 5년째 운영하고 있는데, 여행은커녕 그동안 캠핑장에서 미친 듯이 일만 했다”며 “친구들 만날 생각 같은 건 꿈도 못 꾼다”고 했다. 그는 “한 가지를 얻으려면 한 가지를 잃어야 하는 게 현실”이라고 덧붙였다.

이런 직장인 유튜버들은 취준생에게 현실을 알려주는 좋은 가이드가 되기도 한다. 항공사 입사를 준비 중인 한 취준생은 “항공사 승무원의 일상과 비행 뒤 피부 관리법 등을 담은 동영상을 유튜브에서 보고 있는데 정말 많은 도움이 된다”며 “학원이나 학교에선 가르쳐주지 않는 실질적인 얘기들이어서 좋다”고 했다.

양병훈 기자 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