메디톡스와 대웅제약의 보툴리눔 톡신 균주 도용 소송이 반전에 반전을 거듭하고 있다. 대웅제약이 개발한 보툴리눔 톡신 제제 ‘나보타’의 미국 출시를 코앞에 두고 미국 국제무역위원회(ITC)는 지난 8일 대웅제약에 균주 유전자 분석을 명령했다.

메디톡스는 그동안 대웅제약이 자사의 균주를 훔쳐갔다며 동일 균주임을 입증할 수 있도록 나보타의 전체 염기서열을 공개하라고 요구해왔다. 그러나 기업 비밀이라는 이유로 대웅제약이 거부했고 3년째 공방이 이어지고 있다. ITC의 개입으로 양측의 지루한 싸움이 끝날 수 있을지 주목된다.
메디톡스 vs 대웅…'보톡스 전쟁' 유전자 분석으로 결판
유전자 분석이 비밀 밝혀낼까

ITC 행정법원의 명령에 따라 대웅제약은 15일까지 메디톡스가 지정한 전문가들에게 나보타의 보툴리눔 균주와 관련 서류·정보를 제출해야 한다. 이번 명령은 ITC의 증거 개시 절차에 따른 것이다. 한쪽이 보유한 소송 관련 정보 및 자료를 상대방이 요구하면 제출하도록 의무를 부여하는 절차로 관련 증거가 해당 기업의 기밀이더라도 반드시 제출해야 한다.

ITC는 대웅제약에 나보타를 생산하는 향남 공장과 미국 에볼루스 생산시설에 메디톡스가 접근할 수 있도록 허용하라고 요구했다. 또 균주 도용 여부를 조사하기 위해 보툴리눔 톡신 균주 분석 또는 유전자 분석도 허가하라고 명령했다. 균주 배양부터 저장, 통제, 생산까지의 과정에 대한 기록도 열람할 수 있도록 했다. 사실상 나보타와 관련한 모든 정보를 공개하라고 한 것이다. 대웅제약이 균주에 대한 서류 제출을 거부하자 ITC가 초강수를 둔 것으로 풀이된다.

메디톡스는 반색하는 분위기다. 2017년 미국 법원에 제기한 민사 소송이 한국 법정으로 넘어온 뒤 별다른 진전이 없던 차에 ITC의 명령으로 수사에 속도가 붙게 됐다는 점에서다. 메디톡스는 나보타 균주의 전체 염기서열을 분석하면 자사의 메디톡신과 같은 균주라는 것이 밝혀질 것으로 보고 있다. 나보타의 1만3000개 염기서열이 메디톡신과 일치하기 때문에 나머지 부분을 비교하면 도용 여부를 알 수 있다는 설명이다.

메디톡스는 복수의 전문가를 선정해 ITC 측에 보냈고 이들이 검증 작업에 들어갈 예정이다. 메디톡스 관계자는 “나보타 균주 및 관련 서류와 정보를 확보해 전체 유전체 염기서열분석 등 다양한 검증 방식으로 대웅제약의 불법 행위를 밝혀낼 것”이라고 말했다.

포자 검증으로 맞선 대웅제약

대웅제약은 ITC의 결정에 성실히 임하겠다고 밝혔다. 대웅제약 측은 균주의 출처가 달라도 독소 단백질의 염기서열이 일치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학계에서도 전체 염기서열 380만 개 중 1만여 개가 동일하다고 해서 같은 균주로 볼 수는 없다는 주장에 힘을 실어주고 있다.

대웅제약은 ITC 제소와 별개로 국내 민사소송에 따라 포자 검증으로 다른 균주임을 입증한다는 계획이다. 서울중앙지방법원은 나보타 균주의 포자 형성 여부를 검증하라고 지시했다. 메디톡스에 따르면 자사의 균주인 홀 A 균주가 혐기성 미생물이어서 포자를 형성하지 않고 자연계에서는 발견하기 어렵다.

대웅제약의 주장대로 경기 용인시 마구간 토양에서 균주를 발견할 수 없다는 것이다. 대웅제약은 특수 상황에서는 포자를 만들 수 있다는 점을 증명할 예정이다. 대웅제약 관계자는 “포자를 형성하지 않는다는 메디톡스의 보툴리눔 균주를 제공받아 그 실체를 확인하고 확실하게 검증할 것”이라며 “이번 기회에 제조 방법뿐만 아니라 균주와 관련된 상대방의 모든 허위 주장을 입증하고 분쟁을 완전히 종결할 수 있을 것으로 예상한다”고 말했다.

제약업계는 유전자 분석과 포자 검증 두 가지 방식이 동시에 진행된다면 이른 시일 안에 균주의 출처가 밝혀질 것으로 보고 있다.

업계 관계자는 “나보타가 국산 보툴리눔 톡신 중 최초로 미국 진출을 앞둔 상황에서 양측의 싸움이 계속된다면 한국 바이오산업의 이미지만 나빠질 것”이라며 “균주 논란이 다시 불거지지 않도록 이번 기회에 모든 의혹을 풀어야 한다”고 말했다.

전예진 기자 ac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