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특파원 칼럼] 한국도 '넷플릭스 앤드 칠' 되나
미국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는 ‘넷플릭스 앤드 칠(Netflix and chill)?’이란 말이 있다. 여기서 영어단어 chill은 ‘(TV 등 앞에서) 느긋한 시간을 보내다’는 뜻이다. 집에서 넷플릭스 서비스로 영화나 드라마를 함께 보면서 여유로운 시간을 보내자는 의미로, 일종의 ‘작업용 멘트’다. 우리로 따지면 ‘라면 먹고 갈래?’ 정도의 어감이다.

세계 최대 동영상 스트리밍(실시간 전송) 서비스 업체인 넷플릭스가 폭발적으로 성장하면서 생겨난 유행어다. 넷플릭스는 콘텐츠 제작에 막대한 ‘현찰’을 쏟아부으며 가입자 늘리기에 집중하고 있다. 지난해에만 120억달러(약 14조원)를 콘텐츠 확보에 투입했다. 그 결과 올 1분기 말 기준 세계 가입자 수는 전년 동기 대비 8% 늘어난 1억4890만 명에 달했다.

넷플릭스뿐만이 아니다. 아마존 프라임 비디오(가입자 9000만 명)와 훌루(가입자 3000만 명) 등도 넷플릭스를 추격하며 세를 확장하고 있다. 최근엔 애플, 디즈니, AT&T 등 콘텐츠 강자들이 잇달아 신규 스트리밍 서비스를 발표하며 글로벌 콘텐츠 전쟁을 예고했다.

애플은 앞서 스티븐 스필버그, 오프라 윈프리, 리스 위더스푼 등 유명 할리우드 감독·배우의 최신작을 동영상 스트리밍으로 독점 공급하는 ‘애플TV플러스’ 서비스를 공개했다. 스마트TV 등과 연동해 올 하반기 서비스를 시작한다는 방침이다.

디즈니는 오는 11월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 ‘디즈니플러스’를 시작한다. 미국 출시 후 2021년까지 북미, 유럽, 아시아태평양지역 등으로 서비스를 확대할 계획이다. 2024년 말까지 최소 6000만~9000만 명의 가입자를 확보한다는 목표도 제시했다. 디즈니는 ‘타도 넷플릭스’를 공언하며 월 이용료를 넷플릭스보다 20% 이상 저렴한 6.99달러(약 8000원)로 책정했다.

이들 글로벌 온라인동영상서비스(OTT)는 한국 콘텐츠 시장까지 뒤흔들 가능성이 작지 않다. ‘찻잔 속 태풍’에 그칠 것이라던 넷플릭스는 한국에서 초고속 성장을 거듭하며 유료 이용자 수를 150만 명까지 늘렸다. 월 결제액만 200억원에 달한다. 젊은 층 사이에선 이른바 ‘코드 커팅(기존 케이블TV를 끊고 동영상 스트리밍 서비스에 가입하는 현상)’이 확산하는 추세다.

또 다른 OTT 강자인 아마존 역시 프라임 비디오 서비스를 한국에 선보였고 애플과 디즈니 등도 머지않아 한국 시장에 침투할 것으로 예상된다. 구글은 유튜브로 1인 동영상 시장을 장악한 데 이어 ‘유튜브 프리미엄’ 등 신규 서비스로 관련 사업을 확대하고 있다.

한국 OTT 시장은 올해 6400억원, 내년에는 7800억원 수준으로 예상된다. 5세대(5G) 이동통신의 발전으로 성장세는 더욱 가팔라질 전망이다.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국내 이동통신사들이 자체 플랫폼과 인터넷TV(IPTV) 등을 중심으로 콘텐츠 확대를 꾀하는 이유다. SK텔레콤은 동영상 플랫폼 ‘옥수수’에 지상파 방송사 연합 플랫폼 ‘푹’을 합쳐 곧 새로운 서비스도 내놓겠다고 밝혔다.

넷플릭스 구글 등 해외 플랫폼이 한국 안방까지 점령할 수 있다는 위기감이 커지면서 나타나는 움직임이다. 그러나 이미 타이밍을 놓친 건 아닌지 우려된다. 넷플릭스 앤드 칠의 chill이 한국 업체들엔 ‘chill(오싹한 냉기)’의 의미로 바뀌고 있는지도 모른다.

jra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