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사가 나간 직후 고려대 측에서 연락이 왔다. 고려대 홍보팀 관계자는 “기사에서 고려대 이름을 삭제해달라”며 “문제가 된 교수는 이미 퇴직했기 때문에 더 이상 학교와 관계가 없다”고 주장했다. 과연 그럴까.
가해자 조모 교수(57)는 고려대 재직 당시 개설했던 강의마다 몇분이 채 안돼 수강 인원이 마감될 정도로 인기있는 교수였다. “친구 같고 자상한 교수님”이란 평판이 자자했다. 그가 연구실, 극장, 화장실 등에서 상습적으로 여성의 신체를 불법촬영했다는 사실이 알려지자 대다수 학생이 “그럴 리 없다”는 반응을 보였을 정도다. 성이 같은 다른 교수가 가해자로 몰려 억울한 오해를 받기도 했다.
검찰 수사 결과 ‘자상한 교수님’은 연구실에 방문한 제자들의 신체까지 함부로 촬영했다는 여죄가 새롭게 밝혀졌다. 사안이 커지자 마동훈 당시 고려대 대외협력처장은 2013년 7월 31일 기자간담회를 열고 “해당 교수의 징계 절차를 진행 중”이라고 발표했고 그제야 사건이 수습 국면으로 접어들었다.
그러나 이 같은 발표와 달리 징계는 없었다. 조 교수가 ‘일신상의 사유’로 낸 사직서는 곧바로 수리됐다. 그가 타 대학에 취업할 수 있었던 까닭도 이력서가 깨끗했기 때문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한 미국변호사는 “미국 대학에선 교원을 임용할 때 과거 비위 행위에 대해 전 직장에서 어떤 처분을 받았는지 중점적으로 검토한다”고 설명했다. 고려대 측이 조 교수의 교단 복귀와 무관하다고 주장할 수 없는 이유다.
징계 절차를 밟는 중이라고 발표해놓고 실제 징계하지 않은 이유를 묻자 고려대 측은 “당시 학칙에 ‘반드시’ 징계해야 한다는 규정이 없었다”며 “이후 학칙이 개정됐다”고 해명했다. 결과적으로 당시 고려대의 ‘관대한’ 인사 처분으로 또 다른 잠재적 피해자가 나올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게 된 셈이다. 과거 잘못에 대한 시인 없이 “이젠 관계없다”며 애써 눈감는 고려대 측 태도가 아쉽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