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산 칼럼] 단순한 원칙, 정교한 정책
연말이 가까워지니 아무래도 지인들과 식사 약속이 많을 수밖에 없다. 그런데 대부분의 대화가 경제에 관한 내용이다. 다른 가벼운 주제로 대화를 유도해도 자석처럼 경제 문제로 다시 돌아온다. 속된 말로 ‘기승전-경제’다.

처음엔 내년도 경제 전망에 대한 갑론을박으로 시작된다. 미국 중앙은행(Fed)의 금리 인상 횟수, 미·중 무역분쟁의 귀추, 스태그플레이션이나 스크루플레이션 우려, 추가적 최저임금 인상 영향, 투자와 내수 부진 등 주제가 광범위하고 내용도 깊이가 있다. 그런데 결정적으로 우리를 우울하게 만드는 주제는 이런 단기적 전망이 아니다.

가장 우려하는 것은 우리 경제가 앞으로 일본처럼 장기 침체를 겪을 가능성이 높아진다는 데 있다. “우리 시대는 저물고 있지만 우리 자식 세대와 그 후손들이 정말 걱정된다”고 탄식한다. 이와 관련해 최근 만난 친구의 말이 귓가를 맴돈다. “역사가 우리 ‘586세대’를 어떻게 기록할지 두렵다”는 것이다. 우리 세대는 민주화를 위해 몸을 던졌다는 자부심이 있었다. 그런데 막상 자식들이 취직을 할 나이가 되니 “우리는 어떤 먹거리를 우리 자식 세대에 물려줬는가” 걱정된다는 것이다. 그렇다면 우리 경제가 이런 ‘비커 속의 개구리’ 신세를 벗어나기 위해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

경제학은 물리학과 같은 경성과학(hard science)이 아니다. 많은 변수가 도사리고 있고 함수 관계도 고차원적이고 동태적이다. 이렇게 복잡한 문제일수록 거시적 방향성은 단순하게 설정하고 미시적 정책은 오히려 신중하게 가져간다는 원칙이 필요하다.

먼저 거시적 방향성은 경제원론 수준의 교과서에도 그 해법이 제시돼 있다. 첫째, 먹거리를 만드는 데 시장만큼 효율적인 주체는 없다. 경제는 결국 경제 주체들의 인센티브에 의해 움직인다. 개별 경제주체들의 인센티브에 의해 결정된 수요 공급에 따라 형성된 시장만큼 자원의 효율적 배분을 만들 수 있는 기제는 없다.

둘째, 물론 시장이 만능은 아니다. 외부효과나 정보의 비대칭성 등 불완전성으로 인해 가격 기능이 왜곡될 경우 시장은 효율적 배분을 창출하지 못할 수 있다. 이런 영역에서는 정부 규제가 필요하다. 금융이나 의료 등 특정 산업에 대해 일정 규제가 필요하고 제조업과 관련한 환경 규제가 필요한 이유가 이것이다.

셋째, 시장실패가 없더라도 시장은 동태적으로 부(富)의 불균형을 낳을 수 있다. 부의 불균형 심화는 경제적 문제뿐 아니라 정치·사회적 문제까지 야기하므로 정부가 일정 부분 소득재분배 기능을 통해 이를 완화할 필요성이 있다. 다만 소득재분배 정책의 원칙은 시장에 개입하는 것보다 조세 및 이전지출같이 시장의 자원배분 결과에 손대는 방식이 효과적이다. 거시적 방향성은 이 세 가지 원칙에 충실하면 된다.

이런 원칙을 정책화하는 단계에서는 매우 신중하고 면밀한 분석이 요구된다. 정부가 가격이나 수량에 대해 직접적으로 개입하는 경우일수록 특히 그렇다. 이런 정책에 의해 필연적으로 시장 참여자 중 누군가는 이익을 얻고 누군가는 손해를 입는다. 자원배분의 왜곡으로 인해 효율성 역시 감소한다. 잘못하면 결과가 정책 목적과 반대로 나타날 수도 있다. 예를 들어 최저임금 인상의 경우 최저임금 대상의 노동수요는 가격탄력성이 매우 높은 반면 공급의 가격탄력성은 낮은 편이다. 이에 따라 최저임금 인상이 생산자 잉여를 증가시킬지 감소시킬지는 불명확하다. 시장 수요 및 공급에 대해 사전적으로 매우 치밀한 분석이 요구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이와 관련해 한 가지 주의할 것은 새로운 정책일수록 이런 치밀성이 더 요구된다는 점이다. 우리 사회는 문제가 발생하면 이를 해결할 특단의 대책을 내놓으라고 요구하는 경향이 있다. 안타깝게도 경제에는 요술방망이 같은 새로운 정책은 없다. 새로운 정책일수록 실증적으로 증명되지 않았기 때문에 정책 실패 위험성이 더 높다. 따라서 기존 정책을 좀 더 치밀하고 정교하게 가져가는 것이 효과적인 경우가 많다.

변화가 요구되는 시점일수록 ‘그 밥에 그 나물’이라는 원색적 비판보다는 정책의 디테일로 들어가 이에 대한 충분한 논의를 통해 정책의 효율성도 높이고 위험성도 줄이는 접근이 필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