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만 취미 없어? 한경 기자들의 '주말 사용법' (1) MTB
'자전거 쯤이야' 무턱대고 도전장
페달 밟자마자 가속도에 '깜짝'
노면 충격은 엉덩이로 '쿵쿵'
"이거 타고 죽은 사람 없다고요?"
어쩌다 일찍 눈을 뜬 토요일 아침. 놀고 싶어도 뭐하고 놀지 모르겠다. 나만 취미가 없는 것 같다는 생각에 왠지 마음의 가난을 느낀다. 독서 음악·영화 감상은 취미라고 부르기엔 뭔가 모자란다. 그래서 찾아 나섰다. “내 취미는 이거야”라고 자신 있게 말할 만한 것들을. “나만 취미 없어”라는 말은 잠시 넣어둘 수 있도록….“이거 타다 죽은 사람은 없대.” 이 한 마디에 용기가 생겼다. 자전거와는 거리가 먼 부실한 하체. 그러나 ‘나만 취미 없어’를 되뇌이지 않기 위해 용기를 내 MTB(산악자전거)에 올랐다. 아 근데 웬일. 눈앞에는 우레탄으로 포장된 매끈한 자전거 도로 대신 나무뿌리가 얽힌 비포장 산길이 나를 향해 일어설 준비를 하고 있었다.
한 번 내친 걸음. 다시 한 번 되뇌었다. ‘죽은 사람은 없대.’ 페달을 밟았다. 내리막에 들어서자 속도가 붙었다. 어어. ‘이걸 가속도라고 하는 구나’라는 생각이 들어올 틈도 없었다. 겁이 확 나 손에 힘을 꽉 줬다. 브레이크는 녀석을 세워줄 힘이 없었다. 두 바퀴가 잠기며 자전거가 그대로 주욱 미끄러졌다. 기겁을 해 손의 힘을 다시 풀었다. 앞바퀴가 비스듬하게 난 나무뿌리 위를 넘을 때는 핸들바가 술에 취한 듯 춤을 췄다. 그리고 어느새 코앞에 와 있는 점프대. 자전거 두 바퀴가 모두 허공으로 떠오르는 순간이 왔다. 마치 영화 ‘ET’처럼.
◆업힐 없이 다운힐만 즐길 수 있다고?
로드자전거를 타는 사람은 지천이다. 주말이면 페이스북에 이상한 복장을 하고 등장하는 수많은 지인들. 경치는 좋은데 모델은 글쎄. 오죽 많으면 자전거 회사 사람들이 “로드자전거에 입문할 만한 사람들은 이미 다 타고 있는 것 같은데”라고 말할 정도다.
그냥 올라타려 했지만 잠시 대기. MTB를 타고 다운힐을 하려면 먼저 할 일이 있었다. 자전거의 서스펜션(완충장치)을 체중에 맞게 조정해야 한다는데. 뭔말이지? 서스펜션의 공기압이 낮으면 자전거가 필요 이상으로 출렁거린단다. 반대로 공기압이 너무 높으면 충격을 제대로 흡수하지 못한다고.
다음은 기어와 가변식 포스트에 익숙해질 차례다. MTB를 타는 건 처음이라 낯설었다. 기어는 오른손으로만 조작할 수 있게 돼 있었다. MTB는 양손을 쓰는 로드와 달리 오른쪽에 있는 기어로만 모든 조작을 끝낼 수 있다.
왜 오른손만 열일을 시키지? 궁금했다. 왼손이 할 일은 더 막중하단다. 가변식 포스트 조작이라는 엄청난 일을 해야 한다고. 이것만 조작하면 안장을 단숨에 높이거나 내릴 수 있다. 왜 이런 기능이 필요할까. 역시 나의 사고구조는 너무 단순했다. 아무리 다운힐이라 해도 산길을 내려가다 보면 오르막이 나오기 마련인 것을. 업힐을 할 땐 안장을 높여야 제대로 페달에 힘을 실을 수 있단다.
◆업힐 없어도 힘들다
다운힐 코스 앞까지는 차를 이용해 이동했다. 코스에 도착해서는 석 대리가 앞장서고 그 뒤를 따라 가는 식으로 다운힐을 시작했다. 다운힐을 하기 전 그는 몇 번이나 같은 말을 반복했다. “페달을 돌릴 필요가 없을 땐 페달을 반드시 수평으로 만드세요.” 왜 그말을 했는지는 속도가 붙자마자 깨달았다.
동호회가 만든 작은 점프대를 뛰어넘었을 때였다. 부실하던 하체가 흔들리며 페달을 딛고 있던 왼쪽발이 아래로 향했다. 그리고 그 순간 불규칙하게 튀어나온 노면과 페달 바닥이 충돌했다. 그 충격으로 페달에서 그만 두발이 모두 떨어져나갔다. 내려앉은 엉덩이가 흔들리는 안장 위에서 춤을 췄다. 아, 석대리의 또 다른 경고가 떠올랐다. “다운힐 도중에 절대로 안장에 앉지 말 것.” 그러나 늦었다. 아, 내 탓이 아니라 머리 탓인 것을. 다음은 예상한 대로. “으헉!”
노면과 닿은 충격이 그대로 안장에 전해졌다. 엉덩이가 허공으로 쑤욱 하고 떠올랐다. 분명 내리막에서만 자전거를 탐에도 금방 온몸이 땀으로 범벅이 됐다.
이렇게 첫 번째 도전은 끝났다. 다리는 후들거렸지만 이상한 쾌감이 스멀스멀 기어올라왔다. 한 번도 안 탄 사람은 있어도, 한 번만 탄 사람은 없다더니. 물론 그때 내가 다시 그 장소로 향한 이유는 따로 있었다. “야 니 사진을 안 찍어 오면 어떻게 해.”
■MTB
mountain bike의 줄임말. 산에서 타는 산악용 자전거를 의미한다. 도로 등에서 타는 로드자전거에 비해 최고 속도는 떨어지지만 튼튼하다. 바퀴 지름이 20~27인치로 일반 자전거보다 작지만 최대 2.5배 두껍다. 1970년 미국 사이클 선수인 게리 피셔는 일반 사이클에 모터사이클 바퀴와 자동차 쿠션 등을 달고 산에서 탔다. 이 자전거를 처음으로 ‘산악자전거’라고 불렀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