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켓인사이트 9월27일 오후 3시30분

한국전력의 자회사인 한국남부발전이 국내에서 30년 만기 그린본드를 발행한다. 한국 기업이 지금까지 국내외를 통틀어 찍은 그린본드 중 만기가 가장 길다.

금융투자업계에서는 이제 막 싹을 틔운 국내 그린본드 시장에 초장기물이 등장한 것을 주목하고 있다. 환경·사회·지배구조(ESG) 투자의 중요성이 부각되고 있는 글로벌 시장 흐름에 맞춰 그린본드가 본격적인 성장을 시작할 것이라는 전망이 나온다.
◆초장기물 첫 등장

27일 투자은행(IB)업계에 따르면 남부발전은 28일 국내에서 30년 만기 그린본드 1000억원어치를 발행할 계획이다. SK증권이 주관을 맡아 투자자 모집 등 발행에 필요한 절차를 마무리했다. 남부발전은 이번 그린본드 발행으로 조달한 자금을 신재생에너지 설비투자 등에 사용할 방침이다.

한국 기업의 그린본드 발행은 한국수출입은행이 2013년 해외에서 찍은 5억달러가 최초다. 이후 해외에서만 발행이 이뤄지다가 올 들어 지난 5월 산업은행이 국내에서 처음으로 3000억원 규모의 그린본드를 발행했다. 이어 지난달에는 신한은행도 국내에서 2000억원짜리 그린본드를 찍었다. 그러나 산업은행과 신한은행의 그린본드는 만기가 모두 5년 이하였다. 앞서 해외에서 발행된 그린본드도 5년 이하 만기물이었다.

남부발전이 이번에 발행하는 30년 만기가 주목되는 이유다. 신정식 남부발전 사장은 “신재생에너지에 지속적으로 투자할 것이란 의지를 보여준 것”이라며 “30년물 발행은 국내 투자자들에게 아직 생소한 그린본드 시장을 키우는 데도 기여할 것으로 기대된다”고 말했다. 그는 이어 “해외와는 달리 국내에는 ESG 채권 투자를 전문적으로 하는 기관이 없지만 보험사 등 장기채권 투자에 적극적인 곳이 많아 투자 수요를 모으기 수월했다”고 덧붙였다.

◆ESG 채권 성장 본격화 기대

그린본드가 활성화되면 ESG 채권 성장의 기폭제가 될 것으로 전망된다. 한국동서발전(5억달러)과 롯데물산(2억달러)은 지난 7~8월 차례로 그린본드와 소셜본드가 결합된 성격의 지속가능채권을 발행했다. 기업은행도 지난달 5억달러어치 소셜본드를 찍었다.

소셜본드는 자금조달 목적이 저소득층 및 중소기업 지원, 사회 인프라 구축 등 사회문제 해결을 위한 투자로 제한된 채권이다. 앞서 지난 5월엔 한국수력원자력이 깨끗한 물 공급과 관련한 투자 자금을 마련하기 위해 워터본드(3억달러)를 발행했다.

환경 보전과 사회 공헌의 중요성이 커지면서 글로벌 ESG 채권 시장이 빠르게 성장하자 국내 자본시장도 이 같은 흐름에 맞춰 변화하고 있다는 분석이다. 국제자본시장협회(ICMA)에 따르면 지난해 세계 그린본드 발행 규모는 1555억달러로 전년 대비 60%, 2015년 대비로는 239% 증가했다.

정부도 친환경 정책에 공을 들이고 있다. 산업통상자원부는 2016년 말 7%이던 신재생에너지 발전 비중을 2030년까지 20%로 끌어올린다는 목표를 주된 내용으로 하는 ‘재생에너지 3020 이행계획안’을 지난해 말 발표했다.

다만 ESG 채권은 발행기업의 자금조달 목적이 채권 성격에 부합하느냐를 외부 기관으로부터 검증받아야 하기 때문에 일반 채권 발행보다 시간과 비용이 더 든다. 이 때문에 발행 기업이나 투자자의 구미를 당길 만한 정책이 필요하다는 목소리가 작지 않다.

싱가포르에선 현지 증권거래소가 ESG 관련 채권을 발행하는 기업들의 적격성 인증 비용을 지원해주고 있다. 프랑스 등 몇몇 유럽 국가는 ESG 채권에 투자하는 기관들에 세금을 일부 감면해주고 있다.

한 대형 금융회사 자금부서 관계자는 “이미지 제고 이상으로 ESG 채권을 발행하는 게 낫다고 생각할 만한 인센티브를 줘야 더 많은 기업이 움직일 것”이라고 했다.

● 그린본드

green bond. 발행을 통해 조달한 자금을 재생에너지, 전기차, 에너지 효율 개선 등 친환경 관련 투자에만 쓸 수 있게 한 채권.

김진성 기자 jskim1028@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