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태환 헬스리안 대표가 자체 개발한 심전계 'wearECG12'를 소개하고 있다. 임유 기자
노태환 헬스리안 대표가 자체 개발한 심전계 'wearECG12'를 소개하고 있다. 임유 기자
애플이 심전도를 측정할 수 있는 '애플워치4'를 내놓자 웨어러블 헬스케어 기기에 대한 관심이 높아지고 있다. 지난 19일 한국바이오협회가 판교에서 주최한 융합기술포럼에 연사로 참석한 노태환 헬스리안 대표(사진)는 기자와 만나 "우리는 웨어러블 헬스케어 디바이스 기술과 서비스 기술을 모두 보유하고 있다는 점에서 하나만 하는 기존 업체와 다르다"고 했다.

디바이스 기술은 반도체의 성능을 높이면서 크기와 전력소모는 줄이고 반도체가 잘 작동하는 기기를 만드는 데 필수적이다. 서비스 기술은 생체신호를 정확하게 처리하고 이를 안전하게 저장하는 소프트웨어와 관련 있다. 노 대표는 "웨어러블 기기의 핵심은 착용이 간편하면서도 측정값이 정확해야 한다는 것"이라고 했다.

노 대표는 KAIST에서 의료기기 전용 반도체 설계 관련 연구로 2014년 박사 학위를 받았다. 그는 "보통 반도체가 전기신호를 받아들이는 부품이라면 바이오 반도체는 생체신호에 특화한 제품"이라며 "생체신호를 분석하는 알고리즘과 프로세서를 개발했다"고 했다. 이 회사의 송기석 연구소장도 생체신호를 감지하는 센서를 설계하는 전문가다.

2012년 설립된 헬스리안이 개발 중인 제품은 심전계와 혈압계다. 심전계는 심장 근육이 수축·이완하면서 발생하는 전기신호를 파장 형태로 기록한 심전도를 측정하는 기기다. 심전도는 심근경색, 부정맥 등 심장질환을 정확히 진단하는 데 매우 중요한 자료다.

심근경색은 급성 질환으로 환자의 30%가 병원에 도착하기 전 사망한다. 구급차나 중환자실에서 빨리 측정해야 하는 이유다. 주로 12유도 심전계가 사용된다. 12유도 심전계는 환자 몸에 10개의 전극 센서를 붙여 12개 신호를 확인해 이상 유무를 점검하는 기기다.

전문가가 아니면 전극 센서를 정확한 위치에 붙이기 어려워 미시행률이 90%에 달한다는 조사자료도 있다. 또 옮길 수 있는 기기가 아니라서 중환자가 병원 안에서 다른 검사 때문에 이동하려면 심전도 측정을 멈춰야 해 심근경색 진단 정확도가 떨어질 수 있다는 단점이 있다.

부정맥 진단에 쓰이는 홀터 심전계는 몸에 붙인 3~5개 전극이 목걸이나 허리에 차는 심전계에 유선으로 연결된 형태다. 부정맥 여부를 파악하려면 12시간 이상 홀터 심전계를 착용한 채 생활해야 하는데 무게가 스마트폰 한 개에 가까운 기기에 줄 여러 개가 주렁주렁 매달려 있어 여간 불편한 게 아니다. 착용자의 불편함을 덜기 위해 전극을 필요한 수보다 적게 부착하는 일이 잦아 측정값도 부정확하다.

헬스리안의 'wearECG12'는 두 심전계의 문제점을 해결한 제품이다. 우선 10개의 전극 패치가 통째로 연결돼 있어 비전문가도 빠르게 달리는 구급차 안에서 쉽게 환자 몸에 붙일 수 있다. 또 전체 기기 무게가 50g에 불과해 기기를 몸에 붙인 채 이동할 수 있어 연속적인 측정이 가능하다. 착용한 채 생활하기에도 불편하지 않다. 방수 기능이 있어 샤워를 할 수도 있다. 12개 심전도를 모두 재기 때문에 정확도 역시 높다.

저전력 무선 통신으로 스마트폰, 태블릿PC 등 IT 기기에 측정값이 전송돼 의료진의 진단을 돕는다. 지난 2월 식품의약품안전처로부터 품목 허가를 받고 수가까지 산정됐다. 지난해부터 중국의 한 제약사와 합작회사 설립을 위한 논의도 진행 중이다.

노 대표는 "수가가 적정하지 않아 국내 시장 진입은 바로 힘들 것 같다"며 "응급의료 영역에서 많이 쓰일 수 있다고 보고 이르면 다음 달 삼성서울병원과 임상시험을 시작할 예정"이라고 했다.

헬스리안의 '비피 밴드(BP Band)'는 손목 시계 모양의 혈압계다. 그는 "커프형 혈압계와 밴드형 혈압계의 장점을 모두 갖춘 제품"이라고 설명했다. 커프형 혈압계는 정확도는 높지만 연속적 측정이 힘들다.

연속적 측정이 중요한 까닭은 전체 고혈압 환자의 15%를 차지하는 난치성 고혈압 환자의 경우 24시간 연속 혈압 측정 검사를 하지 않으면 20% 비율로 뇌졸중, 심부전 등으로 사망하기 때문이다.

반면 밴드형 혈압계는 연속 측정은 가능하지만 정확도가 낮다. 밴드의 압력 센서가 손목 근처의 동맥이 발생시키는 압력 맥파를 측정하는 토노메트릭 방식은 전문가가 일정한 압력을 사전에 입력해야 정확히 측정할 수 있다.

마치 한의사가 맥을 짚듯 어느 정도 압력이 유지되는 상태에서 맥박에 의해 반사된 압력을 측정해서다. 광센서를 활용한 혈압계도 있지만 동맥이 아닌 모세혈관의 부피 변화로 맥파를 측정해 정확도가 떨어진다.

헬스리안의 우수한 바이오 반도체 기술력이 비피 밴드에 적용됐다. 노 대표는 "혈압이 낮아지면 혈관 부피가 작아지면서 전기 저항이 높아진다"며 "이 원리를 바탕으로 세계에서 유일한 전기 저항 맥파 센서 반도체를 개발했다"고 밝혔다. 비피 밴드는 압력을 가하는 방식 대신 전극으로 전류를 흘린 뒤 전압을 재는 방식으로 대동맥 맥파를 연속적으로 측정할 수 있다.

그는 "체성분 분석기에 쓰이는 반도체 칩과 유사한 원리지만 민감도는 1000배 이상"이라며 "우리 칩은 같은 성능의 기존 전기 저항 맥파 회로보다 소모 전력이 72분의 1 수준이고 회로 크기도 6분의 1 수준"이라고 했다.

시제품은 올해 말 완성될 예정이다. 내년 초 임상시험을 시작해 이르면 내년 말 제품을 출시한다.

임유 기자 freeu@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