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민연금 개편과 관련해 ‘연금의 국가 지급보장’ 문제를 둘러싼 논란이 큰 이슈다. 기금 고갈에 대한 국민의 막연한 불안을 이유로 섣불리 명문화했다간 국가 재정에 큰 부담을 초래할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런 이유로 그동안 정부에서도 이 문제에 관해 뚜렷한 결론을 내리지 못했다.

이런 상황에서 문재인 대통령이 27일 국민연금 급여 지급보장을 법에 명문화하는 방안을 검토하라고 지시했다. 기금 고갈에 대한 국민의 불안을 해소하자는 취지로 해석되지만 의도와 달리 소모적인 논쟁을 부를 가능성이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행 국민연금법은 ‘국가는 연금 급여가 안정적·지속적으로 지급되도록 필요한 시책을 수립·시행해야 한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 규정만으로도 기금이 고갈될 경우 국가가 책임을 부담한다는 해석이 충분히 가능하다는 게 법조계의 분석이다.

그럼에도 일부 시민단체는 기금 고갈에 따른 국민 불안을 해소해야 한다며 명문화 필요성을 줄곧 주장했다. 이에 따라 ‘연금 급여의 지급에 필요한 비용을 국민연금 재정으로 충당할 수 없는 경우에는 국가가 이를 부담한다’는 내용의 법 개정안(정춘숙 더불어민주당 의원)도 발의된 상태다.

그러나 개정안대로 명문화하면 오히려 논란이 벌어질 가능성이 더 크다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현재 세대는 불안을 해소할 수 있을지 몰라도 미래 세대는 세금으로 구멍 난 국민연금을 메워야 하는 것 아니냐는 또 다른 불안이 커질 가능성이 있다는 것이다. 세대 간 갈등으로 비화할 우려가 제기된다.

지급보장을 명문화한 공무원연금, 군인연금 등과 형평성을 맞춰야 한다는 주장도 있지만 고용주가 있는 공무원, 군인과는 연금의 기본 성격이 다르다는 분석이 나온다. 다만 일각에선 명문화하면 공무원연금, 군인연금처럼 국가가 수백조원의 충당부채를 쌓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의문도 제기되지만 기획재정부는 연금 기본 성격이 달라 부채 이슈는 없을 것으로 분석했다.

연금 지급보장을 명문화한 해외 사례도 찾기 힘들다. 일본은 지급보장 규정이 없다. 독일은 지급보장 규정이 있지만 우리와 달리 매해 필요한 급여를 보험료로 걷어 지급하는 ‘부과방식’이어서 직접 비교가 힘들다. 국민연금연구원 관계자는 “우리처럼 적립방식으로 연금제도를 운영하는 나라 중에선 명문화를 규정한 곳이 없다”고 말했다. 이에 따라 보건복지부 산하 국민연금 제도발전위원회는 지난 17일 ‘현행대로 명문화하지 말라’고 정부에 권고했다.

명문화에 ‘숨은 이유’를 국민이 제대로 알아야 한다는 지적도 나온다. 제도발전위원회가 권고한 대로 국민연금 보험료율을 올리려면 국민 동의가 필요하고, 이를 위해 명문화라는 ‘당근’을 제시하는 것이라는 게 전문가들의 지적이다.

김일규/심은지 기자 black0419@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