8년 전이었다. 서울 강남구에 있는 연당장학회에 한 젊은이가 찾아왔다. 그는 장학회가 교육비를 지원해준 덕분에 무사히 의대를 마치고 의사가 됐다고 했다. 자신이 받은 도움을 다른 이들에게도 돌려주고 싶다며 매달 30만원을 장학회에 보내고 싶다고 했다. 이 젊은이는 8년 동안 한 달도 거르지 않고 꼬박꼬박 돈을 보냈다.

연당장학회를 설립한 이재현 조양국제종합물류 회장은 “연당장학회가 올해로 40년이 됐다”며 “장학금을 받은 이들이 사회에서 자리를 잡고 다시 연당장학회에 기부하는 사례가 늘어나고 있다”고 말했다. 연당장학회의 정식 명칭은 33인 민족대표 연당 이갑성 선생의 호와 이름을 딴 ‘연당 이갑성장학회’다. 이재현 회장은 이갑성 선생의 손자다.
독립운동가 후손들이 만든 中企 '남다르네'
독립운동가 조부 유언으로 40년 장학금 후원

독립운동가들을 후원한 LG그룹 창업자 연암 구인회 선생과 유한양행 창업주 유일한 선생의 일화 등은 잘 알려져 있다. 하지만 독립운동에 참여했던 독립운동가나 그 후손이 세운 중소기업들은 잘 알려져 있지 않다. 선조들은 독립운동을 통해 나라에 기여했고, 후손들은 기업활동과 각종 사회공헌을 통해 사회 발전에 보탬이 되기 위해 애쓰고 있다.

조양국제물류는 1978년 설립됐다. 그해 1월 회사 문을 열고, 연말에 국가유공자 자손들을 지원하기 위해 연당장학회를 세웠다. “일제강점기에 독립운동을 한 이들의 후손 중 형편이 어려운 학생이 있으면 공부를 계속할 수 있게 도와주라”는 이갑성 선생의 유언을 손자가 받들었다. 조양국제물류는 사업의 사활이 걸려 있던 창업 초기부터 각종 경제 위기에도 굴하지 않고 매달 빠짐없이 연당장학회를 통해서 장학금을 광복회에 보냈다. 장학금을 받을 학생을 선정하고 집행하는 일은 광복회가 맡고 있다. 2016년까지 530여 명이 장학금을 받았다. 연당장학회는 출연금과 기금 조성을 통해 더 많은 학생을 도울 계획이다.

조양국제물류는 적극적인 고용 창출 공로를 국가에서 인정받기도 했다. 충청지역 물류센터를 확장하면서 200명을 새로 고용해 올해 고용노동부가 선정한 ‘2018 대한민국 일자리 으뜸기업’ 100곳 중 하나에 뽑혔다.

통일부터 민족사 정립까지 다방면 활동

미래엔은 독립운동가이자 기업가이던 우석 김기오 선생이 세운 한국 최초의 교과서 출판사다. “최고의 교과서가 미래의 인재를 키운다”는 김기오 선생의 신념을 바탕으로 설립됐다. 1948년 대한교과서라는 이름으로 문을 열어 올해로 창립 70년을 맞았다. 1949년 10종 18책 교과서를 발행한 이후 1951년에는 6·25전쟁으로 어려워진 상황에서도 피란지 부산으로 인쇄기를 옮겨 가며 교과서를 발행했다.

2000년대 들어서 미래엔은 남북관계를 개선하고 통일을 대비하는 사회공헌 활동에 힘쓰고 있다. 2004년에는 북한에 윤전기를 기증했다. 오는 9월에는 통일이 됐을 때를 대비해 남북한 초등생이 모두 사용할 수 있는 통일교과서를 내놓는다는 계획이다. 새터민은 물론 해외 동포도 사용할 수 있는 교과서다. 2020년 12월까지 단계적으로 보완작업을 거쳐 학생은 물론 교사가 쓸 수 있는 교과서까지 준비 중이다. 4대째 가업을 승계해온 미래엔은 올해 명문장수기업으로 선정되기도 했다.

경기 부천시에 있는 가락전자는 한국 최초의 오디오 믹서 회사다. 오디오 믹서란 여러 종류의 음원을 합치거나 조절할 수 있는 장비다. 가락전자는 독립군 장이호 선생의 아들 장병화 회장이 1977년 설립했다. 품질은 좋지만 값이 비싸던 수입 오디오 믹서를 대체할 수 있는 제품을 내놓았다. ‘가성비’뿐 아니라 품질을 인정받으며 독일 미국 등 25개국으로 제품을 수출하고 있다. 가락전자는 친일 활동 청산을 위한 사회공헌 활동을 이어오고 있다. 가락전자는 올해로 12회를 맞는 임종국상을 전액 후원하고 있다. 임종국상은 친일문제 연구에 헌신한 임종국 선생을 기려 제정된 상으로 친일 청산과 역사정의 실현, 민족사 정립이라는 고인의 뜻에 따라 개인과 단체에 수여한다. 장 회장은 셋째 아들에게 경영을 맡긴 뒤 성남산업진흥재단에서 경기 성남시에 있는 중소기업과 벤처기업을 지원하고 있다.

이우상 기자 idol@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