야구에서의 포지션은 크게 두 가지로 나뉜다. 투수, 아니면 야수다. 같은 야구 선수라고 해도 투수와 야수는 훈련방식부터 마인트 컨트롤하는 방법까지 완전히 다르다. 그러니까 다시 말하면 투수의 삶을 살던 선수가 야수로 포지션을 바꾸는 건 완전히 다른 인생을 사는 것과 같다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이런 경우 중에서 대성공을 거둔 선수들이 있다. 그야말로 9회 역전 만루 홈런을 치는 것과 같은 선택으로 자신의 인생을 확 바꿔 놓은 야구 선수들. 오늘은 그들을 탐구해봤다.
▲대한민국이 낳은 가장 위대한 야구선수-추신수
이후 시애틀 매리너스, 클리블랜드 인디언스, 신시내티 레즈를 거쳐 현재 텍사스 레인저스 소속으로 아시아 최초 3할-20홈런-20도루 달성, 동양인 최초 MLB 사이클링 히트 달성 등 굵직한 기록을 세웠다. 특히 추신수는 외야에서 수비를 할 때 투수 출신답게 강한 어깨로 빨랫줄 송구를 과시하며 홈으로 파고드는 주자들을 여러 차례 잡아내기도 했다.
특히 추신수는 올 시즌에 기량이 완전히 꽃을 피워 51경기 연속 출루 기록을 세웠고 또 야구 인생 최초로 메이저리그 올스타전에 출전하는 영광도 안았다.
▲"만화야구는 계속 된다"-오타니 쇼헤이
오타니는 1994년 7월 5일 일본 이와테현 미즈사와 시에서 태어났다. 그는 초등학교 3학년 때 처음 야구를 시작했고 5학년 때 이미 구속 110km/h를 찍으며 일본 언론의 관심을 받았다.
2013년 니혼햄 파이터스의 유니폼을 입고 일본 프로야구에 데뷔한 오타니는 2014 시즌부터 투타에서 놀라운 성적을 내기 시작했다. 이 시즌 상반기때 오타니는 투수로서 15경기에 등판, 97이닝을 던지며 평균 자책 2.23(리그 2위), 탈삼진 117(리그 2위), 볼넷 26개를 기록하며 9승(리그 2위) 1패의 성적을 거뒀고 타자로도 52경기에 출전해 3할이 넘는 타율과 5개의 홈런을 기록해 이도류로서 진가를 드러내기 시작했다.
오타니는 일본 무대를 평정한 이후 올 시즌 미국 메이저리그에 진출하면서도 투타 겸업을 선언했다. 그가 미국에 진출한다고 했을 때 압도적인 자금력을 가진 뉴욕 양키스나, LA다저스 등 이른바 '빅마켓'이라고 불리는 구단들이 오타니에게 눈독을 들였지만 오타니의 행선지는 의외로 LA에인절스였다.
그가 LA에인절스행을 선택한 가장 큰 이유는 바로 '타자 오타니'로서의 기회가 보장됐기 때문이다. 실제로 오타니는 이번 시즌 투수로 9경기에 등판해 4승 1패, 평균자책 3.10의 성적을 내고 있으며 타자로는 45경기에서 타율 0.283에 7홈런 22타점을 기록하며 준수한 성적을 기록 중이다.
▲'영원한 국민 타자'-이승엽
이승엽은 경북고등학교 졸업에 맞춰 연고 지명을 통해 계약금 1억 3200만원, 연봉 1000만원의 조건으로 1995년 삼성 라이온즈에 투수로 입단했다. 이승엽은 좌완 투수 유망주였으나 경북고등학교 시절 당했던 팔꿈치 부상으로 인해 입단 초기부터 투수 훈련에 애를 먹었다.
결국 이승엽은 첫 스프링 캠프에서 당시 타격코치였던 박승호로부터 1년 만에 타자로 뛸 것을 권유받았고 이후 좋은 기량을 선보이자 구단은 그를 1루수로 완전히 전향시켰다.
타자로 완전히 적응을 끝낸 이승엽은 프로 첫 해부터 가능성 있는 모습을 보여 주다가 점차 거포로서의 재능을 뽐내며 붙박이 3번 타자 겸 1루수로 자리매김했다. 프로 입단 3년차인 1997년부터는 본격적으로 그의 타격이 정점을 찍기 시작했고 그는 아시아 프로 야구 역사상 최고의 타자로 거듭났다.
▲'조선의 4번 타자'-이대호
그는 2001년 롯데 자이언츠의 2차 1라운드 지명을 받아 에이스급 우완 투수로 입단했지만 입단 후 첫 전지 훈련에서 어깨 부상을 입게 됐다. 하지만 이대호의 유연한 타격폼과 남다른 비거리를 알아본 당시 유용득 2군 감독의 제안으로 내야수로 전향했다.
성공적으로 타자 전향을 하며 한국에서 리그를 대표하는 1루수로 자리 잡았고 2010년에 타격 7관왕, 9경기 연속 홈런으로 세계 신기록을 세우기도 했다. 이후 미국, 일본리그에도 진출해 한·미·일 모두에서 뛴 최초의 한국인 타자로 이름을 남겼다.
▲'2018 KBO 프로야구 신인상은 따논 당상?'-강백호
강백호는 서울고 시절 '투타겸업' 선수로 유명했다. 그는 고교 시절 잘 알려진대로 파이어볼러였고 '이도류'에 대한 가능성도 높은 상황이었다. 하지만 김진욱 kt 위즈 감독은 "투수로서 재능이 있지만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쓰지 않겠다. 연장전에 가서 투수가 없거나 시즌 막판 팬들을 위한 이벤트성 등판 정도만 가능할 것"이라고 말해 그의 이도류 가능성에 대해 선을 그었다.
강백호 자신도 김진욱 감독의 말을 뒷받침했다. 강백호는 "감독님이 시키면 하고, 안 시키면 안 하겠다. 감독님 결정에 따르겠다. 올스타전이 끝난 지 며칠 지났지만 아직도 팔이 뭉쳤다. 제대로 준비하지 않고 갑자기 준비해서 그런지 힘들기는 하다. 내 몸이 기계는 아닌 것 같다"고 고백해 타자에 집중할 것임을 시사했다.
하지만 '한국의 오타니'를 기대했던 팬들은 아쉬움을 표시하기도 했다. 고교시절에도 평균 150km의 강속구를 뿌린 그의 투수 재능을 앞으로 계속 볼 수 있을지는 미지수다.
▲'2000년대 삼성 왕조 멤버'-채태인
국내로 돌아와 부상에서 회복한 채태인은 타자로 완전히 전향했고 삼성 라이온즈에 입단하면서 2000년 삼성 왕조 시대를 이끌었다. 뿐만 아니라 KBO 최고의 1루 수비 능력을 갖춘 선수로도 인정받았다.
▲"인생은 이호준처럼!"-이호준
하지만 1994년 1군 8경기에 등판해 승패 없이 10점대 평균자책점을 기록하자 타자로의 전향을 심각하게 고민했고 1996년 외야수로 전향해 1군에 복귀했다.
이호준은 해태 타이거즈-SK와이번스-NC다이노스를 거쳐 KBO 리그 최장 23시즌을 현역 선수로 활약한 KBO의 산 증인으로 활약하다가 2017년에 은퇴해 현재는 일본에서 지도자 연수를 받는 중이다.
▲중요할 때마다 한방 터트리는 '나스타'-나성범
이후 나성범은 2012년 신인 드래프트에서 2라운드 1순위(전체 10순위) 지명을 받아 신생 구단인 NC 다이노스에 창단 멤버로 입단했다. 나성범은 입단하면서 투수로 지명을 받았지만 김경문 감독의 권유로 2011년 가을 마무리 캠프를 통해 외야수로 전향했다.
타자 전향 첫 해인 2012년에는 NC 다이노스의 퓨처스 남부 리그 94경기에 나와 타율 0.303, 16홈런, 67타점, 29도루, 33사구를 기록했고 시즌 중에는 4할 타율을 넘기기도 했다. 종합적으로 2012년 남부리그 최다 홈런, 최다 타점을 기록했고 팀 내 유일한 3할 타자였다.
나성범은 타자 전향 이후 2014년·2015년 연속 외야수 골든글러브 수상, 2016년에는 3년 연속 100타점 달성, 2017년에는 커리어 첫 OPS.1.00을 달성하는 등 호타준족의 거포로 활약하고 있다.
현재 나성범은 NC다이노스의 중심타자로 차기 메이저리그에 진출할 가장 가능성이 높은 선수도 평가받고 있다. 마산구장에는 메이저리그 스카우터들이 나성범의 플레이를 지켜보기 위해 심심치 않게 방문해 그의 해외 진출 가능성에도 귀추가 주목되고 있다.
강경주 한경닷컴 기자 qurasoha@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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