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북한 나진항에서 석탄을 선적하는 모습. 통일부 제공
2015년 북한 나진항에서 석탄을 선적하는 모습. 통일부 제공
‘북한 석탄’을 둘러싼 미스터리가 풀리지 않고 있습니다. 유엔 안전보장이사회 대북제재위원회 산하 전문가패널은 어제 “러시아 홀름스크항에서 선적된 북한산 석탄이 작년 10월 2일과 11일 각각 인천과 포항으로 들어왔다”고 발표했습니다. 유엔이 금수 품목으로 지정한 북한산 석탄이 러시아산으로 둔갑해 버젓이 한국에서 팔린 겁니다.

외교부도 저녁 늦게 해명에 나섰습니다. “북한 석탄 반입에 대한 정보를 입수했을 때는 수입 신고가 완료돼 있었다. 석탄이 이미 하역 처리된 것으로 확인해 조치를 취하지 못했다.”고 했습니다. 석탄이 인천항과 포항항에 들어오자마자 시장에 풀리는 바람에 뒷수습에 실패했다는 겁니다.

한국에 유입된 북한산 석탄은 총 9000t으로 알려져 있습니다. 시가로 58만5000달러 규모입니다. 그런데 이 북한 석탄의 행방이 묘연합니다. 정부는 “올 초부터 추적 수사 중”이라고만 했습니다. 이 말이 사실이라면 벌써 반 년을 허송한 겁니다.

석탄 유통 및 발전(發電)업계에선 북한산 석탄을 ‘공식’ 유통하기는 어렵다고 입을 모읍니다. 제품에 ‘꼬리표’가 붙어있기 때문이죠. 북한 석탄의 경우 독특한 성질 때문에 화력발전소에서 연료로 사용하는 게 쉽지 않습니다. 북한 석탄을 땔 수 있는 국내 화력발전소는 한국동서발전의 ‘동해바이오화력’이 유일합니다.

다만 동서발전 측은 “북한 석탄을 허가없이 반입한 사실이 없다”며 손사레를 쳤습니다. 대규모 석탄을 동해항이 아니라 인천 및 포항에서 하역했다는 점에서, 동서발전의 말은 사실일 겁니다. 값싼 연료값에 비해 운송 비용이 너무 많이 드니까요.

해외에서 석탄을 수입해 각 지역 연탄 제조공장에 납품하는 대한석탄공사도 “우리 역시 북한 석탄을 구경하지도 못했다”고 했습니다. 이 회사 관계자는 “북한 석탄을 활용하려면 통일부 산업통상자원부 관세청 등에 모두 신고해야 한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정상적인 과정을 거쳐 유통되지 않았을 것”이라고 추정했지요.

관련 업계에선 몇 가지 가능성을 얘기하고 있습니다. 첫 번째는 민간 건설업체들이 사갔을 가능성입니다. 겨울철 아파트나 건물을 공사할 때 석탄을 때워 내부 온도를 조절하는 관행이 있다고 합니다. 시멘트 타설 때 얼지 않도록 하기 위해서죠. 석탄 반입 시점이 겨울 공사를 앞둔 작년 10월이란 점을 감안한 해석입니다.

또 하나는 석탄이 하역되자마자 인근지역 영세업체로 빠져나갔을 가능성입니다. 업계 관계자는 “인천항 인근에선 섬유업체들이 석탄발전 설비를 사용하고 있는 것으로 알고 있다. 가격만 저렴하다면 얼마든지 유통이 가능하다. 포항에선 포스코의 하도급 제철업체들이 값싼 북한산 석탄을 사갔을 수 있다.”고 귀띔했습니다. 모두 합법적인 유통은 아닙니다.

여기서 궁금한 점이 있습니다. “북한산 석탄을 수입하는 과정에서 과연 우리 정부가 몰랐을까” 하는 점입니다. 정부가 알고도 북한 반발을 의식해 이를 묵인했다면 유엔 제재를 위반한 게 됩니다. 유엔 결의안 2371호에 따르면 모든 국가는 자국민에 의하거나 자국 국적 선박 등을 이용해 북한으로부터 석탄이나 철 등을 조달해선 안된다고 명시돼 있습니다.

요즘 북한과 연계되면 풀리지 않는 의문이 너무 많습니다.

조재길 기자 roa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