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허원순의 논점과 관점] 고등실업자 양산 시대
지난주 발표된 통계청의 4월 고용동향은 언론의 주목을 별로 못 받았다. 청년실업률이 11.2%로, 이 통계를 처음 낸 1999년 이후 최악이었다. 그래도 큰 뉴스는 되지 못했다. 만성질환은 이래서 무섭다. 그보다 며칠 전 통계청이 낸 다른 수치도 그다지 주목을 받지 못한 채 넘어갔다. 대졸 이상 고등실업자가 지난 1분기에 처음으로 50만명을 넘었다는 통계였다. 하지만 실업자 117만명의 47%가 대졸자란 사실은 예사로 볼 일이 아니다. 비경제활동인구에서도 대졸자는 350만명을 넘어섰다.

'급성장·급정체'이면 대졸백수 50만

고학력자 취업난은 ‘급성장-급정체 사회’의 아픈 이면이다. 저성장의 깊고 어두운 응달이다. 현상적으로만 보면 대졸자가 갈 만한 일자리가 많지 않다는 경제 현실이 문제다. 우리 경제를 떠받치는 제조업에도 신규 인력이 많이 필요하지 않다는 것은 구조적 취약점이다. 기계화와 로봇화, 최근에는 AI로 일자리는 욕심만큼 늘지 않는다.

세계 일류 IBM도 인력의 3분의 2만이 4년제 이상 대졸자라는 사실에는 인력 충원과 운용 차원의 시사점이 크지만, 어쨌거나 10년째 소득 2만달러대인 우리 경제의 한계다. 물론 의료부문을 비롯해 금융과 법률, 놀이와 오락 등 서비스 쪽에 좋은 일자리가 생기지 않는 것은 제도적 결함 탓이다. 의료는 ‘공공’ 구호에 점령당했고, 테마파크는 온갖 규제에 가로막혀 있다. 일종의 인재(人災)다.

또 하나 가려진 문제점은 대학생 양산의 비싼 대가다. 대학 급증, 대학졸업장 남발이라는 교육 포퓰리즘이 약간의 시차로 고용시장에서 보복당하는 중이라고 해도 되겠다. 407개나 되는 대학 수(數)부터가 문제지만 기껏 반값등록금 논쟁에 휘둘린 채 대학들은 질적으로 뒷걸음질 쳤다. 말만 고등교육기관일 뿐 ‘고등백수 양성소’로 전락한 셈이다. 1980년 27.2%였던 대학진학률은 2008년 83.8%로 수직상승했다. 에바 페론이 “대중이 원한다”며 대학졸업장을 무한정 찍어대던 영화 에비타의 풍자와 다를 게 없다. 전문계고, 선취업 후진학 등으로 힘껏 떨어뜨린 게 지난해 69.8%다. 이나마의 수준으로 낮추는 데 16년이나 걸렸다.

정년 60세법의 직격탄을 맞는 것도 주로 1990~1995년생이다. 이들이 대학문을 나서면 ‘고등백수’는 공식통계로도 60만~70만명으로 치솟을지 모른다. 더구나 대학 과잉은 공학 기술 같은 실용 교육 쪽도 아니었다. 틀에 박힌 학과 구성은 인문 사회 쪽에서 ‘취업 크레바스 세대’를 집중적으로 배출해 냈다. 정책적 오류에 앞장섰던 교육부와 기득권 교수집단의 책임이 크다.

산업지체·학력과잉·노동적폐 결과

세 번째 원인은 당연히 노동 개혁 불발이다. 산업화와 민주화의 수십 년 동안 한 번도 정면 승부는 걸지도 못한 과제가 노동 개혁이다. 당근책은 넘쳤지만 정규직 노조의 강고한 기득권을 깨겠다는 채찍질은 드물었다. 계약직, 임시직, 파견직, 하청직 외에 정규직으로는 사회 진입의 통로가 너무 좁은 것은 그런 적폐의 결과다. 그렇다고 지금 급물살을 타는 강압적인 정규직 전환이 근본 해법이 아니라는 점은 길게 설명할 것도 못된다.

소득 3만달러 벽을 넘어서지 못하는 산업 경제, 부실 대학들과 학력과잉, 유연성이라고는 없는 왜곡된 고용시장의 합작품이 고등실업자 양산 시대를 만들어 냈다. 무서운 것은 고등백수가 계속 늘 것이라는 어두운 미래다. 이 세 가지를 원래 가야 할 방향으로 돌려놓겠다는 국가적 의지는 도통 안 보이는 게 훨씬 더 두렵다.

허원순 논설위원 huhw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