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체면중시 문화가 소통 막아

중국문화 속에서 체면이 소통에 미치는 영향은 막대하다. 혹시나 누군가의 체면을 상하게 할 것을 염려해서 공개적으로는 지독하게 속을 드러내지 않는다. 會上不說,會後亂說(회의에서는 말을 안 하고, 끝나면 서슴없이 얘기한다), 心照不宣(속으로는 알지만 드러내지 않는다), 明知不說少說爲佳(틀리다는 것을 분명히 알지만, 말을 적게 하는 것이 좋은 것이다) 등의 明哲保身(몸사리기)은 중국인들에게 가장 기본적인 행동강령이다.
지난 칼럼에서 한국 모 대기업의 고위간부들이 중국에 가서 공개적으로 무릎을 꿇은 사례를 소개한 적이 있다. 판매 촉진과 관련한 행사였다고 한다. 한국 식으로 깊은 반성의 모습을 보여주려는 의도였지만, 중국인들에게 심각한 반감만 줬다. 天地父母(천지와 부모님에게만 무릎을 꿇는다), 男兒膝下有黃金(남자 무릎에는 황금이 있다)이라는 말처럼 중국인들은 절대 비즈니스를 위해서 무릎을 꿇지 않는다. 이 사건으로 인해 해당 한국 대기업은 언론과 대중으로부터 뭇매를 맞았다. 아직도 나에게 “그 회사는 왜 그렇게 잔머리 굴리냐!”고 핀잔을 주는 중국인이 있다. 이 사건에는 중국인이 납득 못할 두 번의 잘못이 있다. 하나는 남들에게 무릎을 꿇은 것이다. 또 하나는 (한국인들이 중국 직원들에게 강요했다는 비난에 대해) 인정을 한 직원들이 자발적으로 무릎을 꿇은 것이다라는 공개변명이었다. 중국인이라면 누구라도 이런 얄팍한 거짓말을 믿지 않을뿐더러 더욱 여론을 악화시킬 것임을 분명히 안다. 그런데 그 기업 내의 중국 직원들은 왜 말리지 않았을까? 왜 이런 일이 일어났을까? 그 이유는 (나 아니고 다른 중국인 직원들도 다 아는 일인데) 굳이 내가 나서서 얘기할 필요가 없다는 생각을 했을 것이다. 중국인들이 입버릇처럼 말하는 事不關己高高掛起(나랑 상관없으면, 나서지 않는다)의 전형적인 모습이다.
상대방 '사유방식' 고려해야
수집된 정보를 가지고 보고서를 작성할 때 역시 팩트에 덜 충실한 경향이 있다. 상대방과 나의 관계(및 체면)를 고려해서 수위를 조절한다. (우리에 비해) 지나칠 때가 많고 빈번하다. 업무를 통해 알게 된 인맥과 정보의 공개를 꺼리고, 사유화하는 경향이 있다. 이러다 보니 중국에 대한 정확한 팩트와 근거 또는 누적된 경험치를 얻어내기가 쉽지 않다.
현재의 복잡한 한·중 관계에서 문제가 도대체 무엇인지 파악하는 게 더할 나위 없이 중요할 것이다. 그러려면 중국인들이 무엇을 문제라고 여기는지를 봐야 한다. 나와 타자가 모두 수용할 수 있는 ‘합리적 선택’은 문제에 대한 공통된 인식에서야 가능하다. 내가 맞다고 주장하려면 설득의 방법과 과정에서도 서로의 입장 외에 ‘상대방의 사유방식’도 고려해야 할 것이다.
류재윤 < 한국콜마 고문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