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헌정 사상 첫 대통령 파면] "정치권이 먼저 나서 경제 선순환 생태계 조성해야"
정치권과 각계 인사들은 10일 박근혜 대통령 탄핵 후폭풍을 수습하기 위한 정치권의 역할을 강조했다. 이제 ‘광장 정치’에서 벗어나 국정 시스템의 정상적인 작동을 위해 정치권이 발 벗고 나서야 한다는 주문이다. 이들은 이를 위해 협치와 통합의 리더십을 발휘해야 한다고 한목소리를 냈다.

“대선주자들, 머리 맞대라”

정치 원로들은 헌법재판소 판결 수용과 함께 보수·진보 등 각 진영을 대표하는 대선주자들이 만나 갈등 수습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요구했다.

김수한 전 국회의장은 “정치권에서 국론을 하나로 모으기 위해 모범을 보여야 한다”며 “헌재 결정에 무조건 승복하는 것이 애국하는 길”이라고 말했다. 또 “다행히 우리 국민의 의식 수준이 상당히 높다”며 “정치가 국민을 (한쪽으로) 선동해서는 안 된다”고 충고했다. 박희태 전 국회의장도 “이제는 우리 사회가 승복하느냐 마느냐의 문제만 남은 것”이라며 “폭력적인 저항 없이 준법정신만 지킨다면 국가 시스템을 유지하는 데 문제가 없을 것”이라고 전망했다.

지난해 새누리당(현 자유한국당) 비상대책위원을 맡았던 오정근 건국대 금융·IT학부 특임교수는 “이제는 여야와 좌우를 불문하고 모든 대선주자가 광장 정치에 의존하지 않겠다고 선언해야 한다”며 “대통령의 자질을 보여주려면 이제는 모여서 머리를 맞대고 갈등 수습책을 논의해야 한다”고 조언했다. 박명호 동국대 정치외교학과 교수는 “대선주자들은 정파적 이익보다 국가적 이익을 우선할 수 있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대선 기간 동안 국회가 민생과 경제 현안을 외면해선 안 된다는 주문도 이어졌다. 김형준 명지대 인문교양학부 교수는 “대선 기간에 국회가 제 역할을 못하고 개혁 입법 논의는 정지될 가능성이 높다”며 “선거 기간이라도 필요한 법안은 반드시 통과시킨다는 원칙을 의원들이 지켜야 한다”고 주장했다.

“국론분열 막고 통합리더십 절실”

각계 인사들은 “구습을 딛고 새 시대를 열자”고 한목소리로 촉구했다. 이명박 정부에서 기획재정부 장관을 지낸 윤증현 윤경제연구소장은 탄핵 결정에 대해 “헌법정신을 수호하려는 헌재의 의지”라고 평했다.

또 “헌정 역사상 대통령 첫 탄핵은 희망과 절망을 동시에 보여준 사건”이라며 “한국 민주주의의 강한 힘을 보여줬다는 점에서 희망적이고, 노무현 전 대통령에 이어 두 번이나 한 나라의 정권이 탄핵 심판대에 올랐다는 점에서 절망적”이라고 했다. 이어 “헌법에 우리의 정체성이 담겨 있다”며 “새 지도자는 경제는 시장경제(자본주의), 정치는 민주주의라는 한국의 정체성을 분명히 하는 인물이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신영무 바른사회운동연합 상임대표(전 대한변호사협회장)는 “탄핵 정국에서 발생한 보수·진보 간 갈등으로 국력 손실이 너무 크다”며 “차기 대통령은 국론 분열을 막아야 하는 막중한 과제를 안고 있다”고 강조했다. 성낙인 서울대 총장도 “새로운 정부의 지도자는 통합의 비전을 제시해야 하는 막중한 임무를 지게 됐다”며 ‘통합의 리더십’을 주문했다.

“정치·경제 시스템 신뢰 회복이 우선”

정갑영 FROM100 대표(전 연세대 총장)는 이번 헌재 판결이 한국 사회의 탈정치화에 중대한 이정표가 될 것이라고 의미를 부여했다. 정 대표는 “(헌재가 기업 경영에 대한 부당 간섭을 위법이라고 판단한 만큼) 기업이 자유로운 생산활동을 하고, 창의적 혁신을 활발하게 할 수 있도록 정치권이 먼저 나서 경제 선순환의 생태계를 조성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어 “이번 대선에서 가장 중요한 이슈 중 하나가 일자리 창출”이라며 “기업이 투자를 해야 일자리가 생기는 것이지, 정부가 주도하는 건 지속 가능하지 않다”고 강조했다.

이와 함께 “이번 사태의 가장 큰 손실은 국가 리더십과 사회적 신뢰가 동반 추락한 것”이라며 “4차 산업혁명이란 새로운 글로벌 경쟁 무대에서 살아남으려면 정치·경제 시스템에 대한 신뢰를 회복해야 한다”고 말했다.

정치학계 원로인 임혁백 고려대 명예교수는 헌재의 탄핵 결정으로 더 이상 ‘협량(狹量)의 정치’는 작동하기 어려울 것으로 진단했다. 임 명예교수는 “지금까진 정치인이 잘못해도 선거 때 외엔 책임을 묻기 어려웠다”며 “차기 대통령뿐만 아니라 장관 등도 탄핵 대상이 될 수 있어 앞으로는 좀 더 책임감 있는 정치인만이 살아남을 것”이라고 내다봤다.

박동휘/박종필/마지혜 기자 donghui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