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 국가 브레인이 없다] "정권 바뀌면 버릴 장기전략 왜 짜나"…'조정부' 전락한 기획재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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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 미래과제 손놓은 정부
정권 선호 '전봇대·손톱밑 가시 뽑기' 등 집중
10년간 위기대응 매달려 관료 시야도 좁아져
'외인구단'처럼…전문가 수혈 미래전략 맡겨야
정권 선호 '전봇대·손톱밑 가시 뽑기' 등 집중
10년간 위기대응 매달려 관료 시야도 좁아져
'외인구단'처럼…전문가 수혈 미래전략 맡겨야
‘중·장기 경제사회 발전 방향 및 연차별 경제정책 방향의 수립과 총괄 조정.’
기획재정부는 홈페이지에서 스스로 수행하는 첫 번째 업무를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기재부가 긴 안목을 갖고 중장기 경제사회 발전 방향을 예측하면서 이에 따른 장기 전략과 비전 수립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최근 몇 년간 미래경제전략국의 역할 변화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떨어진 과제 수행 급급한 기재부
기재부가 중장기 과제를 직접 발굴해 정책으로 입안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책 총괄부처’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 이런 현상이 심하다는 게 정부 안팎의 평가다. 현 정부 들어 그나마 호흡이 긴 정책에 속하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청와대에서 내려온 과제다. 기재부는 내용만 채웠을 뿐이다.
올 들어 기재부가 쏟아낸 주요 정책과제도 비슷하다. ‘신산업 육성대책’, ‘서비스경제 발전전략’ 등 이름은 거창하지만 대부분 세금·예산 지원 방안이거나 규제 완화 등을 위한 법 개정 추진 같은 단발성 대책에 집중돼 있다. 중장기 구조 개편이나 패러다임 변화를 추구하는 내용은 없다.
기재부 출신 한 고위 공무원은 “기재부 스스로 중장기 대책을 고민하기보다는 언론이 지적한 문제나 위에서 떨어진 현안을 풀기 위해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하는 역할에 머무는 경향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며 “기획재정부보다는 ‘조정재정부’라는 이름이 더 걸맞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시늉만 하는 중장기 전략
노무현 정부에서는 그나마 재정경제부를 주축으로 정부·민간 합동작업반이 구성돼 한 세대 앞을 내다보면서 ‘비전 2030’이란 장기 국가 전략을 내놓았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2010년 6월 미래기획위원회가 ‘미래비전 2040’을 제시했다. 물론 ‘알맹이 없는 구호’라는 일각의 비판도 있었지만 현 정부 들어선 이런 보고서마저 없다.
지난해 12월 기재부가 국책연구원 10곳을 모아 연구작업반을 만들어 ‘중장기 경제발전 전략’이란 보고서를 내놓긴 했다. 하지만 4년 전 이명박 정부에서 내놓은 ‘중장기 정책과제’와 목차는 물론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기재부 관계자는 “각 정부가 내세운 중장기 정책과제들은 모두 집행 기능이 없는 자문위원회나 민간 공동작업반이 주도해 집권 후반기에 만들어져 차기 정부에서 상당 부분 폐기되거나 수정됐다”며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다 보니 정권 차원에서 수립하는 장기 국정 과제와 공무원이 생산하는 단기 정책이 따로 노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위기 대응 몰입으로 시야 좁아져
기재부가 단기 정책 생산에 급급한 부처로 전락한 이유에 대해선 몇 가지 분석이 있다. 우선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두 차례의 큰 위기를 거치면서 관료들이 눈앞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 생산에 집중하면서 시야가 짧고 좁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명박 정부의 ‘전봇대 뽑기’나 박근혜 정부의 ‘손톱밑 가시’로 상징되는 규제 완화 같은 눈에 보이는 단기 정책을 정권 차원에서 선호하는 것이 기재부의 이런 경향을 가속화했다는 분석도 있다.
옛 경제기획원 출신 전직 장관은 “자원개발이나 녹색성장 등 이전 정부가 내놓은 중장기 정책을 다음 정부에서 전면 폐기하는 일이 되풀이되는 상황에서 공무원에게 장기 국가 아젠다를 챙기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장기전략 전담조직 신설해야
지금이라도 장기전략 연구와 수립을 전담하는 조직을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한 경제부처 고위 관료는 “이 조직은 순환보직을 하면서 단기 성과를 내야 하는 공무원보다는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충원하고 민간 연구소 등 외부 싱크탱크의 지원을 받아 기재부 내에서 일종의 ‘외인구단’처럼 활동하게 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단기 정책 생산 부서로 전락하는 일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한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재부 차원을 넘어 가령 국가인권위원회처럼 집행 기능을 주는 별도의 행정위원회를 신설해 장기 국정 과제를 전담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열/김주완 기자 mustafa@hankyung.com
기획재정부는 홈페이지에서 스스로 수행하는 첫 번째 업무를 이렇게 기술하고 있다. 하지만 기재부가 긴 안목을 갖고 중장기 경제사회 발전 방향을 예측하면서 이에 따른 장기 전략과 비전 수립을 제대로 수행하고 있는지에 대해선 회의적인 시각이 많다. 최근 몇 년간 미래경제전략국의 역할 변화는 이를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떨어진 과제 수행 급급한 기재부
기재부가 중장기 과제를 직접 발굴해 정책으로 입안한 사례는 찾아보기 어렵다. ‘정책 총괄부처’라는 수식어가 무색할 정도다. 특히 박근혜 정부 들어 이런 현상이 심하다는 게 정부 안팎의 평가다. 현 정부 들어 그나마 호흡이 긴 정책에 속하는 ‘경제혁신 3개년 계획’도 청와대에서 내려온 과제다. 기재부는 내용만 채웠을 뿐이다.
올 들어 기재부가 쏟아낸 주요 정책과제도 비슷하다. ‘신산업 육성대책’, ‘서비스경제 발전전략’ 등 이름은 거창하지만 대부분 세금·예산 지원 방안이거나 규제 완화 등을 위한 법 개정 추진 같은 단발성 대책에 집중돼 있다. 중장기 구조 개편이나 패러다임 변화를 추구하는 내용은 없다.
기재부 출신 한 고위 공무원은 “기재부 스스로 중장기 대책을 고민하기보다는 언론이 지적한 문제나 위에서 떨어진 현안을 풀기 위해 부처 간 이견을 조정하는 역할에 머무는 경향이 갈수록 강해지고 있다”며 “기획재정부보다는 ‘조정재정부’라는 이름이 더 걸맞은 상황”이라고 지적했다.
◆시늉만 하는 중장기 전략
노무현 정부에서는 그나마 재정경제부를 주축으로 정부·민간 합동작업반이 구성돼 한 세대 앞을 내다보면서 ‘비전 2030’이란 장기 국가 전략을 내놓았다. 이명박 정부에서도 2010년 6월 미래기획위원회가 ‘미래비전 2040’을 제시했다. 물론 ‘알맹이 없는 구호’라는 일각의 비판도 있었지만 현 정부 들어선 이런 보고서마저 없다.
지난해 12월 기재부가 국책연구원 10곳을 모아 연구작업반을 만들어 ‘중장기 경제발전 전략’이란 보고서를 내놓긴 했다. 하지만 4년 전 이명박 정부에서 내놓은 ‘중장기 정책과제’와 목차는 물론 내용이 대동소이하다. 기재부 관계자는 “각 정부가 내세운 중장기 정책과제들은 모두 집행 기능이 없는 자문위원회나 민간 공동작업반이 주도해 집권 후반기에 만들어져 차기 정부에서 상당 부분 폐기되거나 수정됐다”며 “이런 과정을 되풀이하다 보니 정권 차원에서 수립하는 장기 국정 과제와 공무원이 생산하는 단기 정책이 따로 노는 상황이 반복되고 있다”고 말했다.
◆위기 대응 몰입으로 시야 좁아져
기재부가 단기 정책 생산에 급급한 부처로 전락한 이유에 대해선 몇 가지 분석이 있다. 우선 1997년 외환위기와 2008년 글로벌 금융위기 등 두 차례의 큰 위기를 거치면서 관료들이 눈앞의 위기를 극복하기 위한 정책 생산에 집중하면서 시야가 짧고 좁아졌다는 평가가 나온다. 이명박 정부의 ‘전봇대 뽑기’나 박근혜 정부의 ‘손톱밑 가시’로 상징되는 규제 완화 같은 눈에 보이는 단기 정책을 정권 차원에서 선호하는 것이 기재부의 이런 경향을 가속화했다는 분석도 있다.
옛 경제기획원 출신 전직 장관은 “자원개발이나 녹색성장 등 이전 정부가 내놓은 중장기 정책을 다음 정부에서 전면 폐기하는 일이 되풀이되는 상황에서 공무원에게 장기 국가 아젠다를 챙기라고 요구하는 것 자체가 무리인 측면도 있다”고 말했다.
◆장기전략 전담조직 신설해야
지금이라도 장기전략 연구와 수립을 전담하는 조직을 복원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많다. 한 경제부처 고위 관료는 “이 조직은 순환보직을 하면서 단기 성과를 내야 하는 공무원보다는 민간 전문가 중심으로 충원하고 민간 연구소 등 외부 싱크탱크의 지원을 받아 기재부 내에서 일종의 ‘외인구단’처럼 활동하게 해야 한다”며 “그래야만 단기 정책 생산 부서로 전락하는 일을 방지할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조성한 중앙대 행정학과 교수는 “기재부 차원을 넘어 가령 국가인권위원회처럼 집행 기능을 주는 별도의 행정위원회를 신설해 장기 국정 과제를 전담하도록 하는 방안도 고려할 필요가 있다”고 말했다.
이상열/김주완 기자 mustafa@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