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류학자 존 고다드는 15세 때 자신의 꿈 목록 127개를 작성해 47세까지 104개의 꿈을 이룬 것으로 유명하다. 윗몸 일으키기 200개 하기, 베토벤 ‘월광소나타’ 연주하기부터 달 여행하기 등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것까지 다양한 꿈을 갖고 있던 그는 2013년 89세로 타계하기까지 500개의 꿈 목록을 더 실현했다고 한다.

KBS 예능프로그램 ‘언니들의 슬램덩크’(연출 박인석, 황민규)도 꿈을 실현하는 과정을 담고 있다. 그 방식이 독특하다. 한국 특유의 계(契) 문화에 착안해 ‘꿈계’를 도입했다. 출연진 여섯 명(김숙 라미란 홍진경 민효린 제시 티파니)이 차례로 계주가 돼 자신이 이루고 싶었던 꿈을 실현하고, 나머지 다섯 명은 그 꿈을 실현하는 지원군이 되는 형식이다.

개그우먼 김숙이 첫 번째 계주가 돼 수줍게 말한 꿈은 대형버스 운전하기. 지인들을 가득 태운 대형버스를 운전해 명승지를 안내하며 즐겁게 여행하고 싶다는 소박한 꿈이다. ‘센 언니’ 이미지로 통하는 래퍼 제시가 김숙과 함께 대형 면허시험에 도전하는 ‘페이스 메이커’ 역할을 자청했고 다른 네 명은 매니저로 나섰다.

김숙이 지목한 두 번째 계주인 배우 민효린은 걸그룹 데뷔를 꿈으로 내세웠다. 20대부터 40대까지 노래와 춤 경험이 전무한 멤버 네 명이 포함된 상태에서 실현 불가능해 보이는 꿈이었다. 민효린 소속사인 JYP의 박진영 대표가 프로듀싱과 트레이닝을 맡으면서 판은 매주 커졌고 꿈은 구체화되기 시작했다.

이렇게 탄생한 것이 7월 첫주 각종 음원 차트를 점령한 걸그룹 ‘언니쓰’의 데뷔곡 ‘셧업(Shut up)’이다. 걸그룹답게 ‘칼군무’까지 완성해 KBS 음악예능프로그램 ‘생방송 뮤직뱅크’ 무대에도 올랐다. 제대로 걸그룹 신고식을 한 셈이다.

걸그룹 출신 티파니, 가수 제시 등이 있었지만 홍진경 김숙 등 음악인이 아닌 멤버들이 음악예능 생방송 무대에 오르는 과정은 쉽지 않았다. 이들은 3개월간 시청자들과 함께 안무를 외우고 밤낮없이 연습했다. 이들이 처음 출연한 무대 영상은 네이버 캐스트에서 380만 조회수를 기록해 역대 최고치를 경신했다. 금요일 심야에 방송되는 여성 예능으로선 놀라운 기록이다.

627개의 꿈 목록을 실천한 고다드는 늘 이렇게 말했다. “꿈은 머리로 생각하는 게 아니라 가슴으로 느끼고, 손으로 적고, 발로 실천하는 것이다.” 예능이지만 다큐 같고 드라마 같은 ‘언니들의 슬램덩크’가 시청자에게 주는 감동의 비결이기도 하다. ‘셧업’의 음원 수익금은 처지가 어려운 이들의 꿈 지원비로 쓸 예정이란다. 꿈계 다음 계주의 꿈이 관련 업계에서 초미의 관심사가 됐다는 소식도 들린다. 좋은 예능의 재미있는 나비효과다.

이주영 방송칼럼니스트 darkblue888@naver.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