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시 근로자이사제 도입 괜찮은가

[뉴스의 맥] 먼저 도입한 독일서도 논란…투명성 제고 등 효과 의문
서울시 산하 공기업에 ‘근로자이사제’를 도입하는 문제와 관련해 논란이 일고 있다. 서울시의 근로자이사제는 독일의 근로자 경영참여 방식을 벤치마킹한 것이다. 독일의 근로자 경영참여 방식인 노사 ‘공동결정제도’는 세계적으로 독특한 제도로, 그 도입 기원과 운용 측면을 보면 다른 국가의 경제·산업 환경에서는 수용하기 쉽지 않은 문제들이 있다. 공동결정제도는 독일 기업관계법상 필수 지배구조인 감독이사회와 경영이사회를 구성할 때 근로자 측에 공동결정 권한을 부여하는 방식이다. 일정 규모 이상 독일 대기업의 감독이사회는 노사동수로 구성된다.
[뉴스의 맥] 먼저 도입한 독일서도 논란…투명성 제고 등 효과 의문
감독이사회는 업무를 집행하는 경영이사회(근로자의 인사·복지 전담 노무담당이사 1인 포함) 선임권을 갖기 때문에 근로자 측도 경영이사에 대한 감독과 인사·노무업무에 관여할 수 있는 구조다. 이는 독일에서만 볼 수 있는 독특한 방식으로 독일 특유의 기원과 경제상황이 그 배경을 이루고 있다. 독일의 노사 공동결정제도는 1891년 비스마르크가 완성한 통일 독일제국시대와 바이마르공화국시대 사회민주당의 노동자평의회란 기구에서 시작했다. 자본주의 시장경제와는 약간 불편한 관계로 출발한 것이다.

이 제도는 나치시대에 잠시 폐지됐다가 제2차 대전 직후 독일의 광산과 철강산업에서 부활했는데, 이는 해당산업 노사의 자발성에 의한 것이 아니라 연합국의 강요 때문인 것으로 알려졌다. 연합국은 독일 기간산업인 석탄·철강산업의 노동자를 통제하면 독일 군수산업을 견제할 수 있다고 여겼다. 이것이 그 유명한 몬탄공동결정법(1951년)이다. 공동결정제도는 노사가 주체적인 경영 참여의 필요에서 출발했다기보다 전후 노동조합의 요구와 독일 군비증강 억제라는 연합국의 이해 그리고 연합국의 지배에서 벗어나기 위해 노조와의 협력을 선택할 수밖에 없던 사용자의 이해가 맞아떨어져 탄생한 것으로 봐야 한다.

독일 공동결정제도 찬반 치열

이렇게 출발한 공동결정제도는 전개과정이 순탄치는 않았다. 공동결정제도의 초석이 된 1951년 몬탄공동결정법은 연합국의 기업 몰수에서 벗어난 사용자들의 거센 반발에 부딪혔다. 이후에도 몇 차례 도전에 직면했다. 1976년 공동결정제도를 확대하는 공동결정법 제정 시 사용자 측은 공동결정이 기업의 자율권을 침해한다며 헌법소원을 제기했다.

그러나 독일헌법재판소는 공동결정제도가 소유권 등과 같은 권리와 자유의 핵심영역을 침해하지 않기 때문에 공동결정법에 의한 제한은 비례원칙에 적합하다고 판시했다. 이 판결로 독일 사회에서 공동결정제도의 위헌 논란은 종식된 것으로 보였다. 그러나 위헌 논란에 빠질 정도의 제도라면 해당 사회에서 찬반 논란이 치열했다는 것을 방증한다.

공동결정제도에 대한 독일 사용자단체의 불만도 적지 않다. 가령 △의사결정 지연 등 비효율성 △감독이사회 근로자대표의 독립성 부재와 사리사욕 도모 △외국인 투자자의 부정적 인식 △구조조정을 족쇄처럼 저해한다는 점 등이 거론된다. 독일경제연구소의 조사에서도 이 제도가 △독일 국내의 기업 인수합병에 부정적인 점 △근로자 측 이사의 전문성 부족 △의사결정 과정이 신속하지 못한 것 △민감한 경영정보 유출 가능성 등에서 부정적인 결과를 보였다. 그만큼 공동결정제도에 대한 부정적 영향을 불식시키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노사갈등 예방 효과 의문

물론 공동결정제도에 대한 우호적인 평가도 존재한다. 이들은 공동결정제도가 노사 간 갈등을 줄이고 경제적 효율성도 높인다고 주장한다. 공동결정제도가 경제적 영향에 어떻게 반응하는지에 대한 실증적 분석에서 긍정적인 결론이 제시되는 경우도 있다. 그러나 공동결정제가 기업성과에 미치는 영향은 부정적이거나 없다는 결과가 더 많다. 공동결정제도에 긍정적 지지를 하기 어려운 이유다.

독일 국내의 공동결정제도에 대한 도전은 지금도 지속되고 있다. 일단 도입한 제도 자체를 부정할 수는 없는 일이어서 어떤 식으로 개선해야 할지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 하르츠 개혁기인 2005년 7월 슈뢰더 정권 아래에서 공동결정제도 철폐라는 극단적인 의견을 포함한 제도 완화 논란이 전개되기도 했다.

서울시가 도입하겠다는 근로자이사제는 독일의 공동결정제도와 똑같은 것은 아니지만 국내 기업환경에는 꽤 충격적으로 다가올 수 있다. 서울시는 근로자이사제 도입 배경으로 △사회적 갈등비용 감축효과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의 보편적 도입 △유럽의회 등에서 효과 인정 등을 꼽고 있다. 서울시는 근로자이사제를 통해 공기업 경영을 더 투명하게 하고 시민 서비스를 더 편리하게 제공할 수 있는 거버넌스 실현의 계기로 삼겠다고 한다.

그러나 그게 생각처럼 쉬운 일은 아니다. 서울시는 작년 서울지하철 통합을 촉진한다며 노동이사제와 경영협의회 도입을 약속했지만 이들 기관의 통합은 대규모 인적 구조조정을 우려하는 각 노조의 반대로 무산됐다. 근로자이사제 도입으로 노사 간 첨예한 갈등을 얼마나 예방할 수 있을지 의문이 드는 대목이다. 성과가 없으면 결국 정치만 남는다. 또 근로자이사제의 본류인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도 우리가 벤치마킹할 정도로 보편적인 국제 관행이나 규범으로 보기 어렵다. 유럽식 공동결정제도는 실로 다양해 독일 방식과 다르고, 영미식 경제체제에서는 아예 발견되지도 않는다.

한국의 공기업 노조조직률은 민간부문의 6배에 달한다. 결국 서울시 산하 공기업의 근로자이사제 도입은 공기업 경영에 대한 고민보다 직원의 고용 안정에만 적극적일 가능성을 배제하기 어렵다. 노조에 대한 경영의 투명성과 서비스는 높아질지 모르지만, 시민을 향한 경영투명성과 서비스를 제고할 수 있을지에는 의문을 품지 않을 수 없다. 부당노동행위제도라는 노동조합 보호방식에서 우월한 미국법을 수용하고 있는 한국에서 근로이사제 같은 노동조합 경영참여 방식에서 우월한 독일법을 수용하는 것은 노동조합 과보호 논란을 불러오는 등 산업현장에 미치는 부작용으로 이어질 수도 있다.

고용 안정에만 신경쓸 가능성

끝으로 독일의 공동결정제도는 이해관계자 자본주의를 근간으로 한다. 독일 주식시장 규모는 미국의 20분의 1에 불과하다. 독일 기업의 90% 이상이 유한회사고 주식회사는 1%밖에 안 된다. 95% 이상의 기업이 주식회사인 한국 자본시장 기반 아래에서 근로자이사제 도입이 민간으로 확산되면 투자와 고용에 부정적 영향을 미칠 것으로 우려된다.

서울시는 거대한 실험을 하고 있다. 이 실험으로 한국 사회와 경제가 치러야 할 비용을 생각하면 이 실험에 착수할지 말지 많은 고려와 검토는 물론 서울시민과 국민적 견해에 귀 기울이는 노력 등이 필요하다.

이상희 < 한국산업기술대 지식융합학부 교수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