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쟁영웅' 오금손 대위
'호국인물' 신팔균 선생

29일 국가보훈처와 전쟁기념관에 따르면 영국에서 태어난 스코필드 박사는 1916년 캐나다 장로회 선교사로 방한한 뒤 세브란스 의학전문학교에서 세균학을 가르쳤다. 1919년 3·1운동을 기록으로 남긴 뒤 화성 제암리와 수촌리의 참혹한 학살 현장을 촬영, 세계에 일제 만행을 알렸다. 같은 해 8월 일본으로 건너가 극동지역 선교사 800여명 앞에서 일제의 만행을 규탄하고 일본 총리를 직접 만나 한국인 억압을 중단할 것을 촉구했다.
6·25 전쟁영웅인 오 대위는 1931년 독립운동가 오수암 선생의 외동딸로, 중국 베이징에서 태어난 뒤 부모를 잃고 중국군 가정에서 자랐다. 광복군에 입대해 항일 무장투쟁을 하다가 광복 이후 개성도립병원에서 간호사로 일했다. 6·25전쟁이 터지자 국군에 자진 입대했다. 1950년 8월 초 포항 형산강지구 전투에서 부상자를 간호하던 오 대위는 북한군이 병원을 기습하자 이들을 물리치고 6명을 사살, 대위로 특진했다.
동천 신팔균 선생은 항일독립운동 당시 남만주지역에서 지청천, 김경천 장군과 함께 ‘삼천(三天)’으로 불리며 위명을 떨쳤다. 신팔균 선생은 1902년 육군 참위로 임관한 뒤 1907년 군대 해산 직후까지 황실 경호를 맡았다. 이후 신 선생은 만주로 망명해 서간도와 베이징에서 항일투쟁했다. 일제가 “신팔균의 참여로 대한통의부가 독립단 중 제1위의 군사력을 갖추게 됐다”고 기록할 정도로 무장투쟁을 주도하다가 1924년 중국군의 습격을 받아 순국했다.
최승욱 선임기자 swchoi@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