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경에세이] 무등산
전남대를 다니던 1980년대 어디 한 군데 마음 둘 곳도, 누구 한 사람 기댈 수도 없는 고립무원의 단절에 시달릴 때면 아무도 모르게 찾아 들어가는 산이 있었다. 무등산이었다. 정치적으로 무척 암울한 시기였고, 대학생들의 현실 참여도 그만큼 치열했다. 무등산에 오르면서 가슴 속에 억누르고 있던 말들을 마구 소리치면 막혔던 숨통이 다소나마 트이곤 했다.

이때부터 무등산은 틈만 나면 오르는 친구 같은 산이 됐다. 특히 1월1일 신년 해맞이를 위해 무등산에 오를 때는 추위 때문에 사람들이 중머리재에 있는 억새밭에 불을 질렀다. 지금 같으면 큰일 날 일이겠지만 그땐 초하루의 특별함으로 슬그머니 용인됐던 것 같다. 이젠 그런 ‘불장난’을 재연할 수 없게 됐지만 새해 아침이면 무등산은 여전히 인산인해를 이룬다.

북한산 관악산 등 서울의 산은 산세가 험한 바위산이라 오르다 보면 ‘산이 사람과 싸우자고 덤비는 느낌’이 확연하다. 그러나 무등산은 해발 1000m가 넘는데도 그런 느낌이 없다. 가끔은 소 등허리를 타는 것처럼 ‘이게 지금 산에 오르는 건가’ 싶을 정도다.

능선인 듯 평지인 듯 펑퍼짐하게 눌러앉아 광주를 오롯이 껴안은 무등산. 고봉준령을 자랑하는 백두대간의 산들과는 다른 느긋함을 가졌지만, 오르는 중 갑작스럽게 서석대나 입석대 같은 묵중한 주상절리를 출현시키는 무언의 존재감으로 등산인을 긴장시키기도 한다.

광주 어디서든 무등의 넉넉한 품새가 한눈에 들어온다. 도시와 산이 이리 가까이 있는 경우도 드물다. 산과 사람이 이런 친근함의 자락에서 어울렸기에 소쇄원 식영정 부용당 환벽당이 들어설 수 있었고, 송강 정철이 시를 노래할 수 있었을 것이다.

무등(無等)이란 산 이름엔 ‘등급을 매길 수 없을 만큼 좋은 산’과 ‘등급 없이 모두가 평등한 산’이란 뜻이 있다고 한다. 필자는 후자에 더 친근함을 느낀다. 평등은 우리가 끝내 도달해야 할 불멸의 숙제 아니겠는가.

국립공원으로 승격돼 광주시민만의 오붓함을 잃은 대신, 전 국민의 사랑을 얻은 무등산. 바쁜 와중이지만 이번 주말엔 가족과 무등산장과 꼬막재, 장불재를 거쳐 다시 산장으로 오는 6시간 코스의 산행을 꼭 해야겠다. 오늘 아침에도 눈을 뜨자마자 무등산을 봤다. 겨울의 산정에 쌓인 눈이 젊은 시절 필자의 그 마음처럼 엄하게 빛난다.

강기정 < 더불어민주당 국회의원 okang@assembly.g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