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신의 사연, 시로 써드려요
“저는 예비신부입니다. 졸업 후 둘이 함께 좋은 곳에 취업해 날을 잡았는데 제 곁엔 이제 엄마가 안 계세요. 2014년에서 2015년으로 해가 바뀌는 그 날, 내 나이 스물아홉에서 서른이 되는 그 날, 엄마는 짧은 암투병으로 끝내 저와 이별했습니다. 결혼 날을 잡아둔 채로 제 결혼식을 보지 못하고 눈을 감으셨네요.”

지난해 11월 민음사 편집부로 한 통의 이메일이 왔다. 자신의 결혼식을 앞두고 돌아가신 어머니를 그리워하던 예비신부는 시인에게 ‘햇살처럼 따뜻한 시 한 편’을 부탁했다. 사연을 받은 박준 시인(34)은 ‘숲’이라는 시를 지었다.

‘그해 셋이 함께 장마를 보며 저는 비가 내리는 것이라 했고 그는 비가 날고 있는 것이라 했고 당신은 다만 슬프다고 했습니다 하지만 오늘은 그 숲에 대해 더 쓸 것이므로 슬픔에 대해서는 쓰지 않을 것입니다.’(‘숲’ 부분)

민음사가 회사 블로그에서 진행하고 있는 시 창작 프로젝트 ‘주문제작, 시:당신의 모티브’가 독자들 사이에서 인기를 끌고 있다. 사람들이 겪는 일상의 소재를 바탕으로 시인들이 시를 쓴다는 점이 친근감을 주기 때문이다. 시인이 다른 사람의 사연을 받아 시를 쓴다는 것은 문단에선 낯선 시도다.

지난해 6월 ‘주문제작 시’의 첫 문을 연 오은 시인은 향수를 심하게 뿌리는 상사 때문에 괴로워하는 직장 여성의 이야기를 시로 썼다. ‘킁킁거리기라도 했다가는/ “향기 좋지?”라는 물음이 분사될 거예요/ 내 안의 폭력성은 상승하겠죠/ ‘아니요! 아니요!’ 속으로만 신나게 소리치겠죠/ 연습은 실전과 다르다는 걸 뼈저리게 느끼겠죠.’ (‘그 냄새 좀 제발!’ 부분)

한 달에 두 편씩 ‘주문생산’되는 시들은 내년 상반기께 단행본으로 출간될 예정이다. 프로젝트에 참가한 시인은 오은 박준 성동혁 황인찬 송승언 등 한국 시단을 이끌 기대주로 주목받는 젊은 작가군이다. 박 시인은 “최근 한국 현대시의 주요 문제 중 하나가 소통의 단절이라는 것을 시인들도 알고 있다”며 “이런 프로젝트가 문제 해결을 위한 새로운 방법 중 하나라고 생각한 시인들이 힘들어하면서도 즐겁게 시를 쓰고 있다”고 말했다.

민음사 편집자 서효인 시인(35)은 “시를 본 독자들이 ‘사소해 보이는 사연이 시로 바뀌는 것을 보니 신기하다’고 말하는 등 반응이 좋다”고 설명했다.

박상익 기자 dir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