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은구 기자 egkang@hankyu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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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일 뮌헨이나 도르트문트의 산업단지에 가보면 녹지가 풍부한 공원 속에 생산시설 연구기관 및 지원기관들이 들어서 있다. 스웨덴 스톡홀름 부근의 산업단지인 시스타와 생명과학단지도 마찬가지다. 한국처럼 제조업체만 빽빽하게 들어선 산업단지는 세계적으로 일본 중국 동남아시아 등 극소수에 불과하다. 선진국일수록 주거단지와 기업 공원 연구시설이 공존한다.

최근 독일 뮌헨·뉘른베르크와 스웨덴 스톡홀름의 산업단지를 둘러보고 온 강남훈 한국산업단지공단(산단공) 이사장은 “뉘른베르크에 있는 산업클러스터인 ‘바이에른 이노바티브’는 기업과 은행 상공회의소 프라운호퍼연구소 대학 등이 참여해 자동차 전기전자 의료 생명공학 신소재 에너지 운송 환경 분야의 기술을 개발하는 등 미래 먹거리 발굴에 나서고 있다”며 “이렇게 쾌적한 환경에서 미래를 준비하는 단지가 국내 산업단지의 미래 청사진”이라고 밝혔다.

비교적 최근 조성된 파주출판단지나 오송생명과학단지 등은 몰라도 기존 산업단지를 이런 식으로 바꿔나가기는 쉽지 않다. 입주기업들의 재산은 개별 기업의 고유 자산이어서 정부가 어떤 식으로 바꾸라고 강제할 수도 없다.

하지만 조금씩 변화가 생기고 있다. 우선 구로디지털단지(구로와 금천을 합쳐 통칭 G밸리라고도 함)의 변신이 대표적이다. 110개 지식산업센터가 들어선 이곳에서 과거처럼 칙칙한 공장은 자취를 거의 감췄다.

현재 이곳은 1만여개 업체, 16만여명이 일하는 ‘한국판 실리콘밸리’로 불리기도 한다. 정보기술(IT) 게임 소프트웨어 로봇 메커트로닉스 업체들이 가득한 첨단 산업단지로 탈바꿈했다. 2000년대 초반 서울 강남 테헤란밸리에 둥지를 틀었던 벤처기업 가운데 상당수가 비싼 임차료를 견디지 못하고 이곳으로 옮겨왔고, 창업기업들도 속속 자리를 잡았다.

곳곳에 헬스클럽 요가·영어학원이 들어섰다. 근로자들은 퇴근 후 이곳에서 공부하고 쇼핑하며 영화를 보기도 한다. 하드록밴드의 길거리 공연도 줄을 잇고 지식산업센터 내에서는 쇼팽의 피아노곡이 흘러나온다. 50년 전 처음 들어선 구로공단이 디지털밸리로 바뀌면서 나타난 모습이다.

작년 7월에는 20층 규모에 283개 객실과 컨벤션센터를 갖춘 롯데시티호텔구로도 문을 열었다. 산업단지 안에 호텔이 처음 들어선 것이다.

이런 변화는 구로디지털밸리에 국한된 게 아니다. 산단공은 반월·시화, 구미, 창원, 대불 등 4개 노후 공단 개선계획을 마련해 시행에 들어간 데 이어 17개 국가산업단지를 2017년까지 혁신단지로 지정해 새로운 단지로 바꿔나갈 계획이다. 이들의 공통점은 조성된 지 20년이 넘었다는 것이다.

낡고, 생산시설만 밀집한 공간 환경을 바꿔 ‘젊은이들이 몰려오고 자부심을 느낄 수 있는 곳’으로 바꾸려는 것이다. 생산 연구개발 교육 복지시설 등이 어우러진 곳으로 조금씩 탈바꿈해 나가고 있다.

반월·시화산업단지도 변하고 있다. 이곳에서 가동 중인 기업은 모두 1만7000여개에 이른다. 주로 기계 자동차 화학 분야의 부품과 소재를 생산하는 중소기업들이다. 이곳의 대표적인 변화는 호텔과 오피스텔이 들어선 것이다.

작년 10월 문을 연 안산드림타운(220실 규모)은 근로자 기숙사로 주로 쓰이는 오피스텔이다. 이 지역 기업들은 이곳을 장기 임차해 직원 숙소로 사용하고 있다. 작년 말 문을 연 호텔인터불고안산(203실 규모)은 반월·시화산업단지에 처음 문을 연 특급호텔이다.

최근 4년 새 반월·시화산단 내 어린이집은 한 곳에서 모두 네 곳으로 늘었다. 게다가 반월의 중심도로에선 지하철 공사가 한창이다. 부천에서 이어지는 지하철까지 개통되면 출퇴근도 쉬워질 전망이다.

남동산업단지에도 변화의 바람이 불고 있다. 남동산업단지에 있는 6000여개 기업의 고민은 물류 공간 부족이다. 공장이 빽빽이 들어서 창고를 지을 땅이 없다. 게다가 땅값도 비싸 중소기업으로선 자체 물류창고를 세울 엄두를 내지 못한다. 이들의 어려움을 덜어주기 위해 산단공은 남동공동물류센터를 건립했다. 총 사업비 289억원을 들여 연면적 1만4000여㎡ 규모로 지었다. 2010년 말 준공된 이 센터는 4년여 만에 인천지역 중소기업의 핵심 물류시설로 자리 잡았다. 물류센터 옆에는 지상 6층, 연면적 2만8000㎡ 규모의 성강지식산업센터가 건립돼 80개 중소기업이 입주했다.

산업단지의 변신은 외형에만 그치지 않는다. 구로디지털밸리에 입주한 기업들은 대학, 연구소와 함께 산·학·연 클러스터(집적지)를 조성해 기술 융합을 통한 미래 먹거리 발굴에 나서고 있다. 정보통신기술(ICT)과 디지털콘텐츠, 그린IT, IT융합메디컬, BIC(big data, IoT, cloud) 등 5개 미니클러스터에 가입해 활동하는 기업 및 대학, 연구기관은 480여개에 이른다. 대학은 서울대, 광운대, 숭실대, 서울과학기술대 등 20여곳이 참여하고 있다.

강 이사장은 “낡은 단지의 개조와 쾌적한 환경 조성, 미래 먹거리 발굴에 산업단지 변신의 초점을 맞추고 있다”고 밝혔다.

김낙훈 중소기업전문기자 nh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