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30~40년전 보던 모습 >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왼쪽)은 17일 오전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에서 통신 3사와 휴대폰 제조사 사장단과 간담회를 하고 “기업 이익만을 위해 단통법을 이용하면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회의에 참석한 업계 사장단(오른쪽)이 최 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 30~40년전 보던 모습 > 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왼쪽)은 17일 오전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에서 통신 3사와 휴대폰 제조사 사장단과 간담회를 하고 “기업 이익만을 위해 단통법을 이용하면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겠다”고 말했다. 회의에 참석한 업계 사장단(오른쪽)이 최 장관의 발언을 듣고 있다. 신경훈 기자 nicerpeter@hankyung.com
“단말기유통구조개선법(단통법)은 국민들의 (가계통신비) 부담을 낮추자는 취지인데 오해를 받고 있다면 통신사와 제조사가 행동으로 보여줘야 한다. 기업 이익만을 위해 이 법을 이용한다면 정부 입장에서 특단의 대책을 강구하겠다.”(최양희 미래창조과학부 장관)

[단통법大亂] "이익만 추구하면 특단대책"…기업 '공개협박'한 최양희 장관
17일 오전 7시 서울 반포동 JW메리어트호텔 3층 보드룸. 지난 1일 시행된 단통법이 휴대폰 값만 올려놓았다는 비판이 거세지자 정부는 이날 SK텔레콤 KT LG유플러스 등 통신 3사와 삼성전자 LG전자 등 휴대폰 제조사 사장들을 긴급 소집했다. 정부에선 최 장관과 최성준 방송통신위원장 등 단통법과 관련된 두 부처의 수장이 이례적으로 함께 나왔다. 이른 아침 무거운 분위기 속에 최 장관의 모두 발언이 시작됐다. 이내 취재진과 업계 관계자들의 웅성거림이 들려왔다. ‘특단의 대책’ 등 최 장관의 발언이 전례없이 강경했기 때문이다.
최 위원장도 “단말기 가격이 비싸다는 인식과 통신사만 이익을 보는 것 아니냐는 얘기가 나온다”며 기업들을 몰아세웠다. 이어 “업체마다 사정이 있겠지만 소비자와 유통업체들의 어려움을 분담해달라”고 압박했다.

두 장관의 발언 뒤 이어진 1시간40분간의 회의는 비공개였다. 최 장관 등은 소비자들의 휴대폰 구입비 부담이 낮아지도록 기업들이 보조금 지원을 늘리라고 요구한 것으로 알려졌다. 보조금 확대 경쟁을 하지 말라며 단통법을 제정해놓고 이제 와선 보조금을 더 늘리라고 종용한 데 대해 기업 사장들은 듣고만 있었다는 게 참석자의 전언이다.

간담회가 끝나자 통신 3사 주가는 4~7%까지 곤두박질쳤다. 최 장관의 ‘특단의 대책’ 발언을 휴대폰 요금 인하 압박으로 해석한 결과다.

단통법은 시행 전부터 부작용이 예견됐다. 이 법의 핵심은 누구는 더 받고, 누구는 덜 받는 보조금 차별을 없애겠다는 것이다. 통신사 간 가격경쟁을 하지 말라는 뜻이다. 경쟁이 금지된 통신사 입장에선 보조금을 많이 줄 이유가 없다. 휴대폰 값이 오를 수밖에 없는 구조다.

뚜껑을 열어보니 우려는 현실로 나타났다. 통신사들은 상한선인 30만원의 절반도 안 되는 휴대폰 보조금을 지급하고 있다. 소비자들의 원성과 정치권의 비판이 연일 쏟아지고 있다. 그런데도 미래부와 방통위는 자신들의 잘못은 인정하지 않고 ‘특단의 대책’을 언급하며 기업들을 협박했다.

“1970~1980년식 관치행정이 부활했다” “정책 실패 책임을 민간 기업에 떠넘기고 있다”는 지적이 나올 만하다. 업계 관계자는 “기업이 이익을 추구하는 건 자본주의 시장경제의 기본 아니냐”며 “미래부 장관이 ‘이익만 추구하지 말라’는 말을 했을 때 귀를 의심했다”고 말했다. 다른 관계자는 “휴대폰이 공공재도 아닌데, 가격을 정부가 공개적으로 내리라고 요구하는 건 있을 수 없는 일”이라고 지적했다.

회의가 끝난 뒤 퇴장하는 기업 사장들의 발걸음은 무거워 보였다. 휴대폰 요금 인하 가능성에 대해 하성민 SK텔레콤 사장은 “좀 지켜보자”고 했다. 이상철 LG유플러스 부회장은 “글쎄”라고 말한 뒤 “생각해보겠다”고 했다. 휴대폰 출고가가 높다는 지적에 대해 이상훈 삼성전자 경영지원실장(사장)은 “소비자 입장에서 보면 출고가보다 얼마에 살 수 있느냐가 중요하다”고 말했다. 한 사장은 “이런 거 왜 하는지 모르겠다”며 조심스레 불만을 나타내기도 했다.

김태훈 IT 과학부 차장 taehun@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