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트로 남성] 선과 색의 오묘한 조화…한땀 한땀 장인이 새긴 페이즐리의 아름다움
우아한 곡선과 깊이 있는 색감의 조화. 바로 이탈리아 럭셔리 브랜드 ‘에트로’를 대표하는 페이즐리 문양 얘기다. 페이즐리는 마치 새의 깃털이 구부러진 것처럼 앞은 둥글고 뒤는 날렵하게 떨어지는 라인을 갖고 있다. 옛날 인도 예술문화의 꽃으로 불렸던 카슈미르 지방에서 15세기께 만들어진 직물, 바로 이 캐시미어 직물의 문양을 에트로가 현대적 감각으로 재현한 것이 에트로를 대표하는 페이즐리 문양이다.

◆세련된 페이즐리를 ‘아르니카’ 라인으로 개발
17세기 후반 유럽 상인들이 캐시미어 직물을 이용해 돈을 벌 연구를 했고, 이 직물과 유사한 형태의 천을 짤 수 있는 자카르 기계를 개발하게 된다. 그리고 19세기 빅토리아 왕조 시대에 스코틀랜드 서남부에 있는 페이즐리 자카르 기계를 통해 숄을 대량으로 생산했다. 그러면서 캐시미어 문양의 이름이 페이즐리로 바뀐 것이다.

[에트로 남성] 선과 색의 오묘한 조화…한땀 한땀 장인이 새긴 페이즐리의 아름다움
에트로는 이 페이즐리 문양을 활용해 브랜드 고유의 ‘아르니카’ 소재를 만들게 된다. 레드, 터키옥, 옐로, 올리브 그린, 아이보리, 브라운 등 고급스러운 색감의 면사로 페이즐리 문양을 자카르 기계로 직조한 뒤 폴리염화비닐(PVC)을 사용해 다섯 번의 코팅 과정을 거친 것이 바로 아르니카다. 아르니카는 이탈리아 밀

노에서 손으로 일일이 커팅 과정을 거치는데, 가벼우면서도 내구성이 높아 가방의 원재료로 다양하게 활용되고 있다. 그리고 손잡이와 가방의 테두리는 최고급 천연 가죽으로 일일이 바느질해 견고하게 만든다. 아르니카는 면사를 사용했기 때문에 색감을 잘 살릴 수 있고, PVC 압축코팅을 거쳤기 때문에 내구성이 높고 스크래치에도 강하다는 설명이다.

[에트로 남성] 선과 색의 오묘한 조화…한땀 한땀 장인이 새긴 페이즐리의 아름다움
◆가족 경영으로 브랜드 정체성 이어가


에트로가 주목받는 가장 중요한 이유는 몇 안 되는 ‘가족 경영 브랜드’이기 때문이다. 럭셔리 브랜드 가운데 거의 대부분이 루이비통모에헤네시그룹(LVMH), 케어링(옛 PPR그룹) 같은 대기업에 인수됐지만, 에트로는 브랜드 창시자인 짐모 에트로가 사업 전반을 지휘하는 사장으로 지금도 일하고 있다. 또 장남인 자코포 에트로가 직물과 가죽 부문을, 차남인 킨 에트로가 크리에이티브 디렉터 겸 남성복 부문을, 삼남인 이폴리토 에트로가 재무를, 외동딸인 베로니카 에트로가 여성복을 각각 담당하고 있다.

창시자인 짐모 에트로는 1960년대에 ‘발렌티노’ ‘조르지오 아르마니’ 등 럭셔리 브랜드에 캐시미어 원단을 제공하던 사업가였다. 페이즐리 문양을 에트로 고유의 아르니카로 개발한 인물로 1968년에 자신의 성을 본떠 ‘에트로’를 만들게 된다. 개인적으로 여행을 좋아해 전 세계를 돌아다니며 복고풍의 숄, 군복, 아프리카의 가면, 스포츠 트로피, 향수병, 아르데코의 꽃병, 자동차의 마스코트, 시계, 옛날 직물과 로마시대의 미술품 등 다양한 물건을 수집하는 것으로 잘 알려져 있다.

직물과 가죽 등 원재료를 담당하고 있는 장남 자코포 에트로는 2010년 이탈리아의 직물 산업 대표로서 이탈리아 패션위원회 이사에 선임되기도 했다. 그는 “스스로를 연구자라고 생각한다”며 “연구와 실험은 직물 생산의 기본이기 때문에 인내심을 갖고 탐구한다는 마음으로 포기하지 않고 재료를 만들고 있다”고 했다. 그는 에트로 안에서 아이디어를 내고 프로젝트를 추진하는 일을 주로 하고 있다. 인도와 중국 등 아시아 전역을 여행하면서 수집한 고대 직물 컬렉션을 매우 아끼는 것으로 알려졌다.

◆다품종 소량 생산 방식 고수
[에트로 남성] 선과 색의 오묘한 조화…한땀 한땀 장인이 새긴 페이즐리의 아름다움
에트로의 첫 작품은 1968년 짐모 에트로가 만들었던 실크, 캐시미어, 리넨, 면 제품들이다. 기성복(프레타포르테) 타입의 의류는 물론 맞춤복(오트쿠튀르) 형식의 제품도 만들었다. 여행을 통해 보고 익힌 창의적이고 독특한 색감이 주를 이뤘다. 1981년에는 처음으로 페이즐리 무늬를 활용한 컬렉션을 소개했고 1983년엔 스카프와 숄, 넥타이 등 남녀 액세서리를 전문으로 판매하는 매장을 열었다. 1984년엔 아르니카 라인과 여행가방 등이 에트로의 대표 제품으로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고 1985년부터는 집을 꾸밀 수 있는 이불, 퀼트, 램프갓, 화분과 액자 등 인테리어 소품도 만들었다. 그 뒤로 향수, 홈 컬렉션 등을 내놨고 일본, 파리, 로마, 뉴욕, 런던, 독일, 홍콩 등에 부티크(단독 매장)를 열기 시작했다.

에트로는 무엇보다 모든 제품을 손수 장인이 만든다는 점, 다품종을 소량으로 생산한다는 점, 가족 경영으로 그 정체성을 유지하고 있다는 점 때문에 럭셔리 브랜드로 인정받고 있다. 국내에는 1993년 유통업체 (주)듀오가 신라면세점에 처음으로 부티크를 연 뒤 현재 14개 면세점 매장을 운영 중이다. 백화점에는 1994년 갤러리아 명품관을 시작으로 롯데 본점과 현대 무역센터점 등 29개 매장을 운영하고 있다. 올해에는 국내 최초로 에트로 남성 매장을 현대백화점 압구정 본점에 열었다.

민지혜 기자 spo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