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보경제학 20년 매료
응용분야 무궁무진
'인간다운 경제학' 필요


대학을 졸업할 때까지만 해도 내게 감동으로 다가왔던 것은 애덤 스미스의 ‘국부론’이 아니라 고 박경리 선생의 ‘토지’였다. 군복무를 마친 후 딱히 할 일이 없어 선택한 것이 대학원 진학이었다. 그곳에서 얼마 전 작고하신 홍원탁 선생님을 뵙게 된 것은 행운이었다. 1주일에 두 편씩 논문을 읽고 선생님의 매서운 질문을 견뎌내야 했던 ‘국제무역론’ 수업은 늦깎이 대학원생이었던 내게 공포의 시간이었다. 하지만 한 학기가 끝나갈 즈음에는 교과서 한 권이 내 머릿속에 새겨져 있었다. 강단에 선 지 20여년이 흐른 지금도 나는 학생들에게 그와 같은 완벽한 수업을 해준 적이 없다.
유학을 결심한 1985년 당시 ‘정보경제학(Economics of Information)’은 막 개화하고 있었다. 미국 UCLA에서 이 분야의 젊은 대가 존 라일리 교수를 만났다. 정보경제학의 수학적 정밀성과 광범위한 응용 가능성에 매료된 나는 20여년간 줄곧 이 분야만 연구해오고 있다.
내 주된 연구는 정보경제학 중에서도 ‘도덕적 해이(모럴 해저드)’에 대한 것이다. 학자들 사이에서는 ‘주인-대리인 문제(principal-agent problems)’ 혹은 ‘숨겨진 행위의 문제(hidden-action problems)’로 지칭되기도 한다. 도덕적 해이는 국내에서 외환위기 이후 자주 인용되기 시작했지만 사실은 인류 역사와 늘 공존해온 현상이다. 예컨대 회사의 주주(주인)들로부터 ‘회사 경영’을 위임받은 최고경영자(대리인)가 회사의 이익 대신 자신의 이익을 위해 행동하는 것이다.
도덕적 해이 문제가 경제 분석의 도구로서 도입된 것은 1960년대 말이다. 이젠 기업조직 구성의 문제, 재무계약의 형태, 거시경제 경기순환 등을 설명하는 데까지 응용된다. 한국의 당면과제인 대·중소기업 상생협력 문제, 노사 갈등의 문제, 복지 지출의 효율화, 금융 제도의 선진화 등에 대해서도 시사하는 바가 크다.
내 연구는 기본모형의 수학적 정당성과 이론적 정합성을 증명하는 데 주력하는 ‘이론 부문’에 속한다. 연구를 통해 내가 내린 첫 번째 결론은 도덕적 해이의 가능성이 있는 상황에서는 인센티브 계약이나 성과급 등 ‘유인계약’을 써야 한다는 것이다. 도덕적 해이란 본인이 대리인의 ‘숨겨진 행동’을 직접 통제할 수 없는 상황이므로 이를 간접적으로나마 통제할 수 있어야 한다. 이는 계획경제가 시장경제를 결코 이길 수 없었던 이유와도 연결돼 있다.
두 번째 결론은 유인계약을 쓰되 함부로 써서는 안 된다는 것이다. 현실 세계에서 통제해야 하는 대리인의 숨겨진 행동은 다면적인 경우가 대부분이기 때문이다. 예컨대 초등학교 교사 임금을 책정하면서 학생 성적만 과도하게 반영하면 교사들은 학생 인성을 발달시키려는 노력을 등한시할 것이다.
잘못된 유인계약이 부작용을 부른 예는 무수히 많다. 미국의 백화점 ‘시어스’는 1989년 고객 차를 정비하는 정비기사 임금을 매출에 따라 성과급으로 지급하기로 했다. 당장은 매출이 뛰었지만 정비기사들이 불필요한 서비스를 과다하게 제공했다는 게 발각됐고, 시어스는 소비자와의 법적 다툼을 무마하느라 60여년 만에 적자로 돌아섰다. 국내에서도 성과급이 만병통치약처럼 인식되고 있지만 이에 따른 부작용을 충분히 고려해야 한다.
경제학자들은 한정된 자원을 어떻게 배분하는 것이 사회적으로 가장 효율적인가를 주된 관심사로 삼는다. 그런 차원에서 자유주의 시장경제야말로 이에 근접한 해결책이라고 여긴다. 나 역시 자본주의 시장경제체제야말로 인간이 발명한 사회제도 중 가장 뛰어난 것이라고 굳게 믿고 있다. 하지만 시장경제체제 아래 사회적 효율성의 추구가 빈부격차를 심화시키고 나아가 시장경제체제의 존립 자체를 위협한다면 경제학자들은 시장경제체제 존립에 대한 조건을 제약조건으로 넣고 그 최적화 문제를 풀어야 하지 않을까. 그 결론은 사회적 약자에 대한 배려를 강화한 ‘인간다운 경제학’과 상당히 닮지 않을까 한다.
다산 경제학상을 받은 것은 앞으로 내 인생에서 또 하나의 거대한 짐이 될 것이다. 오늘이 있기까지 도와준 가족과 친지, 그리고 경제학을 하는 즐거움을 알게 해주신 모든 옛 스승들께 감사를 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