3수 끝에 행정고시 합격, 우연한 인연으로 상공부 발령
"집착하면 안 된다" 좌우명…차관까지 오른 밑거름 됐죠
사주팔자를 잘 본다고 이름난 점쟁이가 주저없이 적어 내려간 건 뜻밖에도 공직이었다. 대학교 3학년, 정치학을 전공하는 청년은 이 사주를 보고 의아해했다. 박정희 대통령의 3선 개헌을 반대하는 대자보를 쓰기도 하고, 모교를 비판하는 기사를 연일 싣는 신문사에 찾아가 항의도 했던 청년이었다. 체제에 대한 저항심으로 끓던 그는 공직은 전혀 어울리지 않는다고 생각했다.
“정말 공직을 맡을 숙명 같은 게 있었나 봐요. 허허.” 조환익 한국전력 사장은 40년 전 일을 회상하며 이렇게 말했다.
지난달 22일 조 사장을 서울 서초동 토속음식점 ‘신가예촌’에서 만났다. 박근혜 대통령이 윤상직 현 지식경제부 1차관을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으로 지명하고 1주일이 채 안 된 날이었다. 얼마 전까지 언론은 조 사장을 차기 산업부 장관 후보 중 한 명으로 꼽았다. 산업자원부 차관, 한국수출보험공사 사장, KOTRA 사장에 이어 한전 사장이 된 그의 경력 때문이었다. 스스로도 점쟁이의 말처럼 이제는 장관이 돼야 한다고 생각하고 있진 않았을까.
“7년 전부터 내 이름이 언론에 오르내렸어요. 실제 과거 장관 인선 과정에서 최종 후보군에 세 번쯤 오르기도 했었다는 말을 들었어요. 하지만 작년 12월 한전 사장이 되고 나서 장관에 대한 미련을 완전 버렸습니다. 전력난 때문에 국민이 스트레스를 받고 있는데 장관 시킨다고 한전 사장을 3개월 만에 바꾸면 국민을 화나게 하는 거잖아요. 한전에서 주어진 임무에 충실하자는 생각을 했습니다. 그래도 점쟁이가 3분의 2는 맞힌 셈 아닌가요.”
조 사장이 불편할 수도 있는 질문에 유쾌하게 답하는 동안 당일 새벽시장에서 공수해 온 재료로 만든 음식이 줄줄이 상에 올랐다. 대하찜, 꼬막무침, 전복회, 광어회, 멍게회…. 여기에 고추장 양념으로 조물조물 무친 육회와 달콤하면서 고소한 떡갈비도 입맛을 돋웠다. 훌륭한 요리였다. 하지만 한편으로는 여느 한정식집과 별반 다를 게 없다는 생각도 들었다. 그 순간 조 사장이 말했다. “여긴 밥이 보물이에요. 설악산 약수로 지은 밥이 강된장, 우거지찜이랑 같이 나오는데 최고입니다.”
○고시 꼴찌가 상공부로 간 사연
‘보물’을 기다리면서 조 사장은 관가(官街)에 몸담게 된 사연을 풀어놨다. 서울대 정치학과 69학번인 그가 행정고시를 보기로 마음먹은 건 순전히 다른 곳에 취직하는 것이 어려웠기 때문이다. 그 시절 사회는 정치학과 출신을 삐딱한 시선으로 바라봤다. 취업전선에서 기회를 잡기가 만만치 않았다. 당시 농협에서 드물게 정치학과 졸업생을 모집했다. 하지만 탈락했다. 그때 함께 지원서를 내고 낙방의 쓴맛을 본 친구가 오연천 현 서울대 총장이다.
“정치학과 출신이라면 회사에서 노조를 만드는 극렬분자로 인식하던 때였어요. 취업 문턱이 굉장히 높았죠. 그래서 고시를 해보자고 했죠.”
쉽지 않았다. 두 번을 연이어 떨어졌다. 1973년 세 번째 시험을 치렀다. 그리고 발표 날. 큰 기대를 하지 않았던 조 사장은 합격자 확인도 하지 않았다. 대신 ‘이제부터 장기전에 돌입하자’고 결심했다. 동기 한 명과 볼링을 실컷 치고 집으로 돌아왔는데 동생인 조환복 씨(현 새마을운동중앙회 국제협력위원장)가 합격했다고 알려줬다. 기쁘고 당혹스러웠다. 그때 조 사장이 받은 점수는 ‘56’. “행시 14회 커트라인 점수가 56.00이었으니 내가 117명 가운데 꼴찌로 합격한 거였어요. 허허.”
공무원 연수가 끝나고 조 사장이 배정받은 부처는 내무부(현 행정안전부)였다. 내무부 수습 사무관으로 임용되기 전 6개월간의 공백이 그의 진로를 바꿔놓았다. 이때 배성동 서울대 정치학과 교수가 부탁한 설문조사를 하면서 상공부로 갈 기회를 잡은 것. 우연이었다.
“고위 공무원과 지방 관료의 정치의식을 조사하라는 거였어요. 동기였던 김인규(전 KBS 사장)와 함께 설문조사에 나섰죠. 용돈 벌 생각으로 했는데 당시 찾아간 어느 장관실의 보좌관이 나를 알아보더라고요.” 그는 대학 때 항의하러 찾아간 신문사의 편집국장이었다. “기특했는지 어느 부처에 가고 싶냐고 묻데요. 이미 배정받은 뒤였지만 대부분 재무부나 상공부에 가고 싶어한다고 얼버무렸더니 그 자리에서 누군가에게 전화를 걸더라고요. 괜찮은 놈이 있는데 재무부나 상공부에 가고 싶어한다고. 마침 상공부에 한 자리가 비어 있었어요.” 그때 전화를 받은 사람이 국무총리를 지낸 고건 당시 내무부 지역개발담당관이었다.
시작은 꼴찌였지만 공직생활에서는 달랐다. 상공부 아주통상과 사무관 시절에는 과장 승진을 앞두고 선배의 부탁으로 승진을 고사하기도 했다. 그래도 동기 중 세 번째로 승진이 빨랐다. “공직에 있으면서 너무 승진에 집착하면 안 된다고 생각했어요. 남들에게 뒤통수 밉게 보이는 짓은 하지 말자고 다짐했더니 오히려 일하는 게 훨씬 쉬워지더라고요.”
2001년 ‘잘나가던’ 산자부 차관보 때 뒤돌아보지 않고 사표를 던진 것도 이런 이유에서였다. “차관 승진할 시기였는데 위에서 영·호남 출신을 적절히 기용한다면서 나 같은 서울 출신이 양보해야 한다고 전해 들었어요. 기다리면 차관을 시켜주겠다는 거였죠. 능력이 아닌 지역을 인사의 기준으로 삼겠다는 건데 행정에 정치를 적용하는 거잖아요. 이걸 받아들이면 후배들이 어떻게 생각할까 싶었습니다.” 그렇게 산자부를 떠났다. 하지만 4년 후 그는 차관으로 돌아왔다. ‘집착 없는 결단’이 공직에 복직할 수 있던 밑거름이 됐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집안 대대로 공직 지내
조 사장은 “의도치 않게 공무원이 됐다”고 말했지만 사실 그의 몸에는 ‘공무원 DNA’가 있었는지도 모른다. 조 사장뿐 아니라 부친, 조부, 증조부, 고조부, 현조부에 이르기까지 그의 집안은 대대로 관록(官祿)으로 살았기 때문이다.
"전기료 인상 등 숙제 많아…한전 사장, 슈퍼맨 돼야죠"
조 사장의 아버지는 국회 예결위 전문위원을 지냈다. 할아버지는 국회 차량과에서 일했다. YMCA를 국내 최초로 가입하고 자동차 정비도 국내에서 처음 배운 사람이 조 사장이 기억하는 할아버지다. 증조할아버지는 고종 황제의 시종(侍從·임금 곁에서 어복(御服)과 어물(御物)을 관장하는 벼슬)이었다. 고조할아버지는 예조 참판, 현조할아버지는 이조 참의를 지냈다고 했다.
“어릴 때 집에 6쪽짜리 병풍이 있었어요. 꼬마였던 나는 고무공을 그 병풍에 튀기면서 놀았는데, 너무 세게 던진 나머지 찢어진 거예요. 알고 보니 대원군이 증조부 집에 왔을 때 그려준 병풍이었어요. 증조할머니가 대원군에게 풀을 쒀 얼음이랑 꿀을 넣어 드렸더니 맛있다고 좋아하면서 그려준 병풍이었다네요. 지금 가치로 따지면 어마어마했을 텐데. 가보처럼 보관하는 것은 장원급제 부상으로 하사받은 거울뿐이에요. 그건 어느 조상님이 받았는지 전해지지 않고 있어요.”
공직 집안의 전통은 조 사장이 마지막이다. 조 사장의 아들은 석유업체에, 딸은 언론사에 다닌다. 하지만 그는 “아쉽지 않다”고 말했다.
○예순의 CEO, 또 다른 꿈을 꾸다
조 사장의 옛 이야기가 무르익고 있을 때 ‘보물’이 들어왔다. 구수한 냄새를 풍기는 강된장과 우거지찜, 표고버섯 된장찌개 삼총사가 상에 먼저 올랐다. 이어 무쇠솥에 갓 지은 밥이 나왔다. 유황성분이 들어 있는 설악산 약수로 지어 밥은 노란빛을 띠었다. 찰기가 흘렀고 독특한 향이 났다.
예순을 넘어 한전 최고경영자를 맡게 된 조 사장은 회사 이야기로 화제를 돌렸다. “한국의 현재와 미래가 한전에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에요”라고 했다. “전기요금 인상, 경남 밀양 송전탑 갈등처럼 한국 사회의 갈등이 뭉친 데가 여기예요. 하지만 미래 먹거리가 나오는 데 또한 여깁니다. 아랍에미리트(UAE) 원전 수출로 수조원을 벌었어요”라며 구상에 대해서도 얘기했다. “지금은 생각만 하는 단계지만 일본과 한국 러시아 몽골에 이르는 전력망을 연결하는 슈퍼그리드 사업이 이뤄지면 상당한 부가가치가 있을 거라고 봅니다. 그래서 한전 사장은 슈퍼맨이 돼야 한다는 생각이 들어요.”
후식이 나오고 식사를 마쳤다. 자리에서 일어서면서 조 사장은 “화투를 치러 간다”고 했다. 퇴근 후 시간이 날 때마다 부인과 30분씩 화투를 친 게 어느덧 20년이나 됐다. “화투를 치면서 아내와 얘기를 많이 해요. 치매를 예방하는 건 기본이고요.” 한평생 일에 쫓겨 사는 ‘유령 같은 남편’이 또 다른 ‘슈퍼맨’으로 사는 방법이었다.
조환익 사장의 단골집 신가예촌 가오리찜·삼합에 약수로 지은 돌솥밥 일품
서울 서초동에 있는 토속음식점이다. 숙부와 조카 지간인 신동욱 씨와 신봉석 씨가 8년 전 차렸다. 신가예촌 총주방장인 신동욱 씨는 향토음식점인 서울 청담동 토담골의 주방장이었고, 운영을 담당하는 신봉석 씨는 신라호텔 귀빈(VIP) 담당 매니저였다.
신가예촌은 설악산 약수로 지은 돌솥밥이 유명하다. 설악산 약수는 유황과 철분 성분을 포함해 밥을 지으면 색깔이 노르스름하다. 숨을 쉬는 것으로 알려진 ‘장수곱돌그릇’에 짓는 밥은 윤기가 흐르는 게 마치 찰밥 같다.
경남 함양에서 직접 재배한 콩으로 담근 된장과 고추장도 공수해 온다. 신봉석 사장은 “옛날 시골 외할머니댁에서 먹은 맛을 이어나가자는 생각으로 음식을 만들고 있다”고 말했다.
신가예촌에는 해(海), 산(山), 천(天), VIP 등 네 가지 메뉴가 있다. 전 보쌈 불고기 가오리찜 매생이탕 등 기본메뉴로 구성된 해는 3만3000원이다. 여기에 삼합 떡갈비 대하찜 한우육회 등이 포함된 산은 4만4000원. 산 메뉴에 장어요리 산마즙 전복회 등을 함께 즐길 수 있는 천 메뉴는 5만5000원이다. 당일 새벽시장에서 사오는 해산물을 즐길 수 있는 VIP 메뉴는 6만~7만원이다. (02)525-0986
조미현 기자 mwis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