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문 바로가기
전체메뉴
경제 분야에서 대체 불가능한 AI 한경앨리스 ALICE

사교계 여왕과의 정신적 사랑…샤토브리앙, 관능보다 더 큰 희열 얻다

스토리&스토리 - 예술가의 사랑 (30) 샤토브리앙

오 주여. 저 극치의 아름다움에 깃든 성스러움을 누그러뜨려주소서. 제발 그와 나 사이에 존재하는 거리감을 좁혀주소서.

친구의 제안으로 마담 레카미에(1777~1849)의 살롱을 방문한 당대 최고의 문인 프랑수아-르네 드 샤토브리앙(1768~1848)은 처음 본 이 여인의 모습에 희열과 고통을 함께 느껴야만 했다. 세상에 태어나 처음 보는 극치의 아름다움에 그는 거의 실신할 지경이었다. 마흔의 여인이 저렇게 아름답다니! 그저 함께 자리하고 있을 뿐인데도 짜릿한 황홀감이 밀려왔다. 그러나 그 지고한 아름다움에는 함부로 다가갈 수 없는 신성함이 깃들어 있었다. 그는 모임 내내 레카미에의 관능을 바라봐야 할지 순수함을 바라봐야 할지 도무지 결정할 수 없었다.

수많은 여인과 사랑을 나눈 샤토브리앙이었지만 이런 고통스런 번민을 안겨주는 여인은 처음이었다. 마담 스탈이 모임을 주도하며 대화를 이끌어나가고 있었지만 그의 시선은 시종일관 마담 레카미에에게서 떠날 수 없었다. 샤토브리앙이 적극적으로 토론에 가담하길 기대했던 참석자들은 그의 얼어붙은 표정을 도무지 이해할 수 없었다. 오직 마담만이 어렴풋이 그 이유를 알 따름이었다.

샤토브리앙을 매혹한 마담 레카미에는 리옹의 유서 깊은 귀족가문 출신의 여인이었다. 어려서부터 총명함과 활달함으로 부모의 사랑을 독차지했던 이 여인은 누가 봐도 당대 명망가의 집안에 출가할 것이 분명해 보였다. 그러나 미인의 운명은 박복한 것이던가. 그는 15세 때 부모의 친구였던 42세의 은행가인 레카미에와 결혼, 주위를 놀라게 했다. 할아버지뻘 같은 남편이 어머니의 정부라는 둥 온갖 해괴망측한 루머가 나돌았지만 실은 프랑스대혁명 직후의 불안한 정정 속에서 재산을 지키기 위해 그의 부모가 내린 결정이었다.

다행히 남편은 관대한 성품의 소유자였다. 레카미에는 남편의 후원을 업고 파리에 살롱을 연다. 탁월한 미모와 재치 있는 입담으로 그는 곧 사교계의 여왕으로 떠오른다. 그의 미모와 지성이 얼마나 대단했으면 나폴레옹의 왕비인 조세핀과 함께 당대의 ‘삼미신(三美神)’으로 칭송될 정도였다. 처음에는 왕당파 인사들의 소굴로 지목돼 나폴레옹의 탄압을 받았지만 앙주 생 오노레 가의 그의 살롱에는 늘 명사들로 북적거렸다. 문인 발자크, 생트-뵈브, 라마르틴, 역사가 에드가 퀴네, 정치사상가 토크빌 같은 당대의 명사가 그를 여신처럼 떠받들었다.

샤토브리앙이 마담 레카미에를 처음 만난 것은 바로 그 시절이었다. 그는 첫 만남을 계기로 살롱을 뻔질나게 드나들었다. 그는 레카미에와의 거리를 좁히기 위해 열정을 억누르고 순수함으로 그를 대했고 마담도 그런 그에게 호의를 보였다. 그러나 둘 사이의 만남은 오래 이어지지 못했다. 샤토브리앙이 정치가로, 외교관으로 활동하느라 더 이상 살롱에 출입할 여유가 없었기 때문이었다.

두 사람이 다시 만난 것은 그로부터 12년이 흐른 뒤였다. 그새 마담 레카미에는 남편의 파산으로 거처를 한 수도원으로 옮긴 뒤였다. 레카미에는 그곳에 다시 살롱을 열었는데 파리의 명사들은 그 누추한 곳을 마다않고 꾸역꾸역 모여들었다. 19세기 전반의 명사들은 그곳에 다 모였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었다. 50줄에 들어선 그였지만 예전의 기품 있는 아름다움을 잃지 않고 있었다. 그로부터 20여년에 걸치는 세기의 정신적 사랑이 펼쳐진다. 현실정치에 환멸을 느낀 샤토브리앙은 마담의 거처에서 그리 멀지 않은 곳에 칩거하며 오로지 집필에만 전념했다. 마담의 살롱에 출입하는 게 그의 대외활동의 전부였다.

주변에서는 샤토브리앙을 마담의 정부라고 수군거렸다. 그러나 그는 결코 육체적 사랑을 탐하지는 않았다. 그 점은 말년에 쓴 자서전 ‘무덤 저편의 기억들’에서 “노쇠한 입맞춤으로 아직도 내 기억 속에 생생히 똬리를 틀고 있는 젊은 감정들을 더럽히고 싶지 않았다”고 말한 데서 잘 드러난다. 두 사람은 그렇게 정신적으로 교감하며 하나가 됐다. 둘은 같은 공간에서 잠을 청하진 않았지만 마음은 한시도 떨어진 적이 없었다. 역설적이게도 샤토브리앙은 관능적 사랑을 포기함으로써 관능보다 더한 희열을 만끽했다.

세월의 흐름은 어쩔 수 없는 것일까. 마담 레카미에는 거울 속의 자신의 모습이 어슴푸레 사라져감을 느꼈다. 빛을 갈구하던 그는 백내장 수술을 받았지만 신은 서둘러 그의 눈앞에 칠흑 같은 장막을 드리웠다. 그 사이 여든 살이 된 샤토브리앙도 반신불수가 됐다.

두 사람의 마지막 순간을 묘사한 빅토르 위고의 묘사는 참으로 드라마틱하다. “매일 오후 3시 하인이 샤토브리앙을 마담 레카미에의 곁으로 데려다줬다. 참으로 감동적이며 슬프지 않은가. 더 이상 볼 수 없는 여인은 더 이상 움직일 수 없는 남자를 암중모색했다. 마침내 두 사람의 손이 합쳐졌다. 신이시여 칭송하시라! 생명은 다해가지만 사랑은 여전히 생생하지 않은가.”

정석범 문화전문기자 sukbumj@hankyung.com
  1. 1
  2. 2
  3. 3

ADVERTISEMENT

ADVERTISEMENT

ADVERTISEMENT

  1. 1
  2. 2
  3. 3
  4. 4
  5. 5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