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사고는 결국 사람의 문제…'원자력 마피아' 확실히 걷어내야
추창근 기획심의실장·논설위원
가장 치명적인 방사능 누출을 일으킨 1986년 우크라이나 체르노빌 원전 폭발은 원자로 안전시험 과정에서의 제어봉 조작 실수였다는 것이 정설이다. 원자로에 반드시 존재해야 하는 격납용기가 아예 없는 구조 결함에다 최악의 안전관리, 최악의 사후조치가 겹친 재앙이었다. 지난해 일본 후쿠시마 원전 사고는 거대 쓰나미가 덮쳐 발전소의 모든 전력계통이 침수되고 원자로 냉각기능이 마비된 것이 발단이었다.
원전 사고는 설비 고장, 조작 오류, 자연 재해 등 다양한 요인으로 발생한다. 그럼에도 한 가지 공통점을 꼽는다면 그 모든 사고의 중심에 ‘사람의 문제’가 있었다는 것이다. 관리 소홀, 상황판단 착오, 잘못된 조작, 사후조치 실패 등이 작은 일을 걷잡을 수 없는 사태로 키웠다. 후쿠시마 사고 또한 독립조사위원회는 자연 재해에 원전이 힘없이 무너진 근본 원인을 일본에 만연한 집단주의, 매뉴얼 집착, 지시에만 순응하는 정서 등으로 꼽고 ‘완전한 인재(人災)’라는 결론을 내렸다.
한국의 원전은 어떤가. 고리 원전 1호기가 1978년 운전에 들어간 이래 지금 모두 23기의 원전이 가동될 때까지 큰 사고랄 건 없었다. 작은 고장으로 가동을 멈춘 적은 많지만 심각한 수준은 아니었다. 수십만 개의 정밀 부품이 결합된 원전설비 특성상 고장이 잦을 수밖에 없는데도 다행스럽게 우리 원전의 고장률은 매우 낮은 편이다. 원전이 예기치 못한 문제로 가동이 중단되는 불시(不時)정지율은 2003년 이후 1기당 연평균 0.4~0.6건에 그쳤다. 23기의 국내 원전이 한 해에 고장으로 멈춰서는 횟수가 모두 합쳐 9~14회쯤 된다는 의미다. 반면 원전 선진국인 미국은 1.1~1.4건, 프랑스 1.8~2.4건, 캐나다 1.1~3.1건의 불시정지율을 보이고 있다.
문제는 작은 사고도 사람 탓을 비켜가지 않고 있다는 점이다.최근의 일만 따져도 그렇다. 지난 2월 고리 1호기는 작업자 실수로 외부 전원공급이 끊기고 비상발전기가 작동하지 않아 발전을 멈췄는데도 한국수력원자력은 한 달을 숨겼다. 2010년 12월 신고리 2호기는 나사 하나가 빠진 것을 발견 못해 가동이 중단됐다. 2011년 2월 영광 5호기는 작업자가 흘린 드라이버 때문에 정지됐다. 관리 실종으로 인한 이런 사태는 비일비재하다.
급기야 이번에는 원전부품 공급업체 8곳이 10년 동안 품질보증서가 위조된 ‘짝퉁 부품’ 7600여개를 납품한 비리가 드러나 영광 5·6호기를 정지하는 충격적인 일까지 벌어졌다. 도대체 한수원은 그동안 눈 뜬 장님이었다는 건지, 원전의 안전운영을 위해 무엇을 관리했다는 건지, 이런 부품으로 여태 우리 원전들이 어떻게 큰 사고없이 가동돼 왔는지 등에 식은 땀이 흐를 지경이다.
얼마 전 미국원자력발전협회는 지난 몇 년간 사고가 발생한 원전을 조사해 안전의 심각한 위해 요인을 지적했다. 전문적인 기술영역의 장벽을 쌓은 엔지니어들의 자만과 고립주의, 안팎의 소통부재, 자기비판 부족 등이 문제였다. 우리나라의 ‘원자력 마피아 문화’도 그와 다를 게 없다.
‘하인리히 법칙’이란 게 있다. 큰 사고는 우연히 또는 어느 순간 갑자기 발생하는 것이 아니라 그 이전에 반드시 경미한 사고들이 반복되는 과정이 있고, 큰 재해와 작은 재해, 사소한 사고가 1 대 29 대 300의 비율로 발생한다는 실증적 법칙이다. 큰 사고 앞에 여러 번의 경고성 징후들이 쌓인다는 얘기다.
소 잃고 난 뒤 외양간 고치려 애써봤자 소용없는 일이다. 물론 모든 사람 탓의 사고, 원전 관리의 총체적 부실이 원자력의 경제적·기술적 당위성과 원전 그 자체를 부정하는 근거가 되지는 못한다. 하지만 원전은 100% 안전, 그것에 대한 국민적 신뢰가 전제되지 않고는 존립하기 어렵다. 원전에 있어서 아무리 사소한 문제라도 소홀히 넘겨선 안 되는 이유다. 신뢰가 땅에 떨어진 원전 운영과 안전관리, 그 시스템과 조직·사람들을 더 두고볼 수 없는 한계에 왔다.
추창근 기획심의실장·논설위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