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국만큼이나 재벌개혁 논란이 뜨거운 곳이 이스라엘이다. 지난해 8월 일찌감치 재벌 해체를 진두지휘할 ‘트라첸버그위원회’를 구성해 여러 ‘비책’을 마련했다. 귀가 얇은 경제학자나 정치인들이 이스라엘의 ‘성공사례’를 벤치마킹이나 하지 않을까 깜짝 놀라 전경련이 지난달 말 조사단을 보낼 정도로 주목받고 있다.

그런데 조사단의 결론은 한마디로 “놀랄 일이 아니네”였다. 조사단 보고서는 “이스라엘 수준이라면 지금보다 국내 대기업 규제를 풀어야 하며, 10대 그룹 이하는 은행 소유경영도 가능할 것”이라고 끝을 맺었다.

이스라엘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고 있는 것일까. 이스라엘은 인구 760만명에 1인당 국민소득이 3만1000달러에 이르는 중동의 강소국이다. 금융과 서비스 유통 통신 등 내수 중심의 특이한 산업구조를 갖고 있다. 제조업이 취약해 GDP에서 차지하는 비중은 12% 정도다. 한국의 30%대와 비교조차 안 된다.

책 실패 책임 재벌에 돌려

경제력 집중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이스라엘의 고민거리다. 1980년대 공기업 민영화 과정에서 급성장한 노치단크너(Nochi Dankner), 비노(Bino) 등 4대 재벌그룹이 은행 보험 등 금융과 유통 통신 관광 석유 등 비(非)금융산업을 동시에 장악하고 있다. 지주회사 밑에 금융과 비(非)금융 자회사를 둘 수 있도록 허용해왔기 때문이다. 공정거래법과 금융지주회사법을 통해 지주회사의 금산(金産) 동시 소유경영을 금지하고 있는 우리나라보다 허술했다.

지난해 7월 집세가 올라 살기 어렵다며 청년층을 중심으로 시위가 확산되자 이스라엘은 재벌 개혁 논의를 본격화했다. 한 대기업 계열사가 70% 이상 시장을 차지하고 있는 ‘코티지치즈’라는 국민 주식(主食)의 값이 75%까지 폭등해 재벌의 독과점·폭리 논란에 불을 댕겼다. 성난 민심을 달래기 위해 만든 것이 총리와 재정부 차관, 이스라엘 은행장 등이 참여하는 트라첸버그위원회다. 물가안정, 주거, 복지 확대, 교육 등과 관련한 정책 실패를 대기업의 독점과 폭리탓으로 돌리면서 재벌을 비난하는 여론이 거세졌다. 경제력집중위원회라는 것도 등장했다. 재벌개혁의 핵심은 당연히 금산융합구조를 깨는 데 맞춰졌다.

한국에 비해서는 ‘새발의 피’

이래서 나온 재벌해체방안은 얼핏 보면 놀랄 만하다. 재벌은 금융과 비금융 사업 중 하나를 선택하라는 게 골자다. 적용대상은 자산 400억셰컬(12.5조원) 이상 금융사업군과 자국 내 매출 60억셰컬(1.8조원) 이상 비금융사업군을 동시에 갖고 있는 곳으로 했다. 전경련 조사단이 분석해보니 상위 1, 2위 그룹 등이 영향을 받을 정도다. 비금융사업군을 경영하려면 금융사업을 팔아야 하지만 금융 지주사 지분을 10%까지 소유하는 것은 허용했다. 비금융지주회사가 금융자회사를 소유하지 못하도록 한 우리나라보다 강도가 약하다. 이마저도 6년 내 이행하도록 한 게 키부츠(집단농장)라는 평등정신을 갖고 있는 이스라엘의 재벌해체방안이다. 물론 재계 학계 해외 전문가들의 의견 수렴을 거쳐 만든 방안이다.

한국에선 이스라엘의 전경련 같은 곳이 조사단을 보낸다면 울고 갈 만한 일들이 연일 벌어지고 있다. 제조업 경쟁력을 바탕으로 해외에서 돈을 벌어들이고 있는 간판 대기업들을 싸잡아 잠재적 범죄자로 몰아붙인다. 재계를 대표하는 허창수 전경련 회장이 “일일이 대꾸할 가치가 없다. 무슨 소린지 모르겠다”고 불만을 공개적으로 터뜨리는 게 우리 정치권의 경제 민주화 논의 수준이다.

유근석 산업부장 ygs@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