현직의장 비리 의혹 첫 퇴진…총선 '안갯속'
입법부 수장이 결국 ‘전당대회 돈봉투’ 사건으로 낙마했다. 이 사건으로 임기를 석 달 남겨 놓은 박희태 국회의장이 9일 의장직을 내놓았다. 고승덕 새누리당 의원의 폭로 이후 37일 만이다. 현직 의장이 비리 문제로 불명예 퇴진한 것은 사상 초유의 일이다.

한종태 국회 대변인은 이날 국회에서 기자회견을 열고 박 의장의 사퇴문을 대독했다. 박 의장은 사퇴문에서 “국민 여러분 죄송합니다. 저와 관련된 문제에 대해 큰 책임을 느끼며 의장직을 그만두고자 합니다”고 밝혔다. 이어 “제가 모든 것을 짊어지고 가겠습니다. 관련된 사람이 있다면 모두 저의 책임으로 돌려주셨으면 합니다. 그동안 사랑해주신 국민 여러분께 정말 죄송하고 감사드립니다”고 사과했다.

박 의장은 2008년 7월 당시 한나라당 전당대회에서 고승덕 의원 등에게 돈봉투를 돌렸다는 의혹을 받았으나 그동안 “모르는 일”이라는 입장을 견지해 왔다. 그러나 최근 그의 전 비서 고명진 씨가 돈봉투 사건의 구체적 정황을 검찰에 진술하자 더 이상 버틸 수 없다고 판단, ‘중도하차’를 택했다.

박근혜 새누리당 비상대책위원장은 “늦은 감이 있지만 고뇌에 찬 결단을 내린 것에 대해 다행으로 생각한다”고 말했다. 이로써 박 의장은 이승만, 이기붕, 백두진, 박준규 등에 이어 국회의장의 임기를 채우지 못한 역대 다섯 번째 의장이 됐다. 그의 임기는 오는 5월29일까지였다.

이승만 초대 의장은 취임 두 달여 만에 초대대통령으로 선출되며 중도 사퇴했고, 4대 이기붕 의장은 자살로 생을 마쳤다. 10대 백두진 의장은 10·26 사태로 9개월 만에 물러났고, 13대 후반기와 14대 전반기의 박준규 의장은 재산공개 파문으로 퇴진했다.

국회법에 따르면 의장이 궐위될 경우 즉각 보궐선거를 치러야 한다. 국회의장은 관행상 여당 몫으로 새누리당의 최다선 의원 중 본회의에서 만장일치로 추대하는 방식을 취한다. 후보로는 6선으로 현역 당내 최다선인 정몽준(동작을), 홍사덕(대구 서구), 친박(친박근혜)계 중진 중 처음으로 불출마를 선언한 4선의 이해봉(대구 달서을) 의원 등이 거론되고 있다.

검사장 출신으로 1988년 13대 총선에서 민정당 소속 지역구 의원으로 정계에 입문한 박 의장은 17대까지 경남 남해·하동에서 내리 5선을 했고, 민정당·민자당 대변인을 역임했다. 2007년 대선 때 이명박 후보 측 ‘6인회의’ 멤버로 MB정권의 핵심으로 부상했다.

김정은 기자 likesmile@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