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취재여록] 한국형 헤지펀드의 우려와 기대
최근 수천억달러를 운용하는 미국 헤지펀드의 매니저를 만날 기회가 있었다. 한국계 미국인인 그는 지난 8~9월 유럽 재정위기로 촉발된 한국의 폭락장에서 ‘대박’을 터뜨린 무용담을 털어놨다.

그에게 고수익을 안겨준 것은 연초 강세장에서 돌풍을 일으켰던 ‘자문형 랩’이었다. 글로벌 헤지펀드들에 실시간으로 투자 포트폴리오를 공개하고, 일부 종목에 압축 투자하는 랩은 ‘손 쉬운 먹잇감(a piece of cake)’이었다고 한다. 불과 1주일 동안의 분석을 통해 랩의 구조를 꿰뚫어 본 그의 펀드운용팀은 유럽변수로 장이 출렁이자 랩의 상위투자 20종목을 집중적으로 공(空)매도했다. 대신 랩 포트폴리오에서 소외됐던 가치주를 사들였다.

이런 수법으로 폭락장에서 불과 한 달 남짓 만에 15%가 넘는 수익을 올렸다고 한다. 글로벌 헤지펀드의 목표수익률이 미국 10년물 국채 수익률의 두 배인 연 6~7%인 점을 감안하면 그가 얼마나 짜릿한 스릴을 느꼈을지 쉽게 짐작할 수 있다. 그는 한국 자문형 랩의 허점을 공략했던 게 자신만은 아니었다는 얘기도 덧붙였다.

단편적이긴 하지만 이것이 헤지펀드의 세계다. 수많은 투자기법과 전략으로 무장한 글로벌 헤지펀드들에 특정 종목에만 편중 투자하는 자문형 랩의 허점을 활용하는 것은 어쩌면 일도 아니었을 것이다.

이달 중 한국형 헤지펀드가 마침내 모습을 드러낸다. 지난 9월 한국형 헤지펀드 도입을 골자로 한 자본시장법 시행령 개정안을 통과시킨 뒤 ‘번갯불에 콩구워 먹듯’ 서두른 덕분이다. 겉으론 그럴 듯한 헤지펀드시대가 열리지만, 내실을 뜯어보면 뭔가 엉성하기 짝이 없다. 운용 노하우는 고사하고 전문인력도 태부족이다. 헤지펀드엔 ‘롱쇼트(매수 매도)전략’을 구사하는 것이 필수적인데, 국내 증권회사에는 매도(쇼트)리포트를 써 본 애널리스트도 드물다. 이런 저런 규제에 묶여 있어 ‘무늬만 헤지펀드’란 지적도 나온다.

물론 초기엔 시행착오가 불가피하다. 학습비용도 지불해야 한다. 하지만 가능하면 시행착오와 학습비용을 줄이는 게 좋다. 이를 위해선 헤지펀드의 조기 정착을 위한 당국의 세심한 배려와 운용사의 노력이 필수적이다. 어정쩡하게 헤지펀드 흉내만 내다간 외국계 헤지펀드들에 과실을 모두 빼앗기지 않을까 걱정스럽다.

손성태 증권부 기자 mrhand@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