구조개혁 스피드가 기업 운명 갈랐다
미지근한 사업 구조조정의 대가는 컸다. 중국과 한국에 밀리던 가전 부문에 미련을 버리지 못했던 일본 전자업체 파나소닉이 궁지에 몰렸다. 주력으로 삼았던 TV 사업부문을 대폭 축소하기로 결정한 데 이어 성장산업으로 키워오던 태양전지 증산 계획도 접기로 했다. 산요는 역사 속으로 사라졌다. 백색가전 부문은 중국 전자업체 하이얼로 넘어갔고 나머지 부문도 파나소닉에 흡수됐다. 반면 한발 앞서 기업의 체질을 바꿨던 히타치는 상대적으로 선전 중이다. 15년 전 파나소닉에 빼앗겼던 시가총액 1위 자리도 조만간 탈환할 전망이다.

◆시련에 빠진 파나소닉

파나소닉은 21일 태양전지 사업 증산 계획을 철회하기로 결정했다. 삼성전자 등에 밀려 TV 사업 규모를 줄이기로 한 지 하루 만이다. 니혼게이자이신문은 "태양전지 시장의 경쟁 격화로 가격이 계속 하락하고 있는 데다 엔고로 수출 채산성까지 떨어져 플라즈마 패널 공장을 태양전지 공장으로 변경하려던 계획을 접기로 했다"고 전했다.

파나소닉은 올해 실적 전망도 대폭 하향 조정했다. 이번에 폐지키로 한 TV 사업 주력 공장의 자산을 손실 처리하기로 결정했기 때문이다. 이로 인해 올해 당기순이익은 1000억엔 이상의 적자를 낼 것으로 회사 측은 추정하고 있다. 파나소닉은 당초 흑자를 예상했다.

파나소닉은 구조조정이 더뎠다. 2008년 리먼브러더스 쇼크 이후 대부분의 글로벌 기업들이 뼈를 깎는 구조조정에 몰입하는 동안 파나소닉은 오히려 사업 분야의 중복이 심한 산요를 인수 · 합병했다. 산요의 태양전지 기술을 탐냈지만 그마저 시장 상황이 좋지 않아 큰 효과를 내지 못했다. 경영의 신으로 불리는 마쓰시타 고노스케(松下幸之助) 파나소닉 창업자와 그의 처남인 이우에 도시오(井植歲男)가 세운 산요는 사라진 셈이다.

◆히타치,15년 만의 역전극

1920년 설립된 히타치도 원래는 파나소닉처럼 백화점식 경영을 했다. 창업 초기부터 강점을 갖고 있던 전기 분야 외에도 TV 세탁기 냉장고 등 모든 가전제품을 다뤘다. 그러나 2000년대 초반 중국 등 신흥국의 가세로 가전제품 경쟁력이 떨어지자 과감한 사업개편을 시작했다. TV VTR 등 가전제품은 통폐합하고 전력 · 산업시스템 고기능재료 등의 분야에 힘을 모았다. 한국 등 후발주자에 밀리던 LCD 사업도 포기했다. 2007년 대형 LCD 분야는 파나소닉에,중소형 LCD 사업은 캐논에 매각했다. 대신 발전사업 확대를 위해 제너럴일렉트릭(GE)과 합작회사를 설립하는 등 기업의 체질을 가전업체에서 중전기업체로 바꾸는 작업을 꾸준히 추진했다.

작년부터 효과가 나타나기 시작했다. 작년에 4322억엔의 당기순이익을 올린 데 이어 올해도 비슷한 규모의 흑자를 예상하고 있다. 매출 규모가 비슷한 소니(600억엔 흑자)와 파나소닉(1000억엔 이상 적자)에 비해 상대적으로 우수한 성적표다. 이는 주가에도 반영됐다. 히타치의 시가총액은 최근 1조8000억엔을 웃돌아 전자업계 1위인 파나소닉과 10억엔 정도의 차이로 따라 붙었다. 일본 전자업계에서 줄곧 시가총액 1위를 하던 히타치는 1996년 파나소닉과 소니에 차례로 밀려 15년 동안 3위에 머물다 올해 6월 소니를 제치고 2위에 올랐다.

도쿄=안재석 특파원 yago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