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럽 전역이 부유층 세금 부담을 늘리자는 소위'부자 증세'논쟁에 휩싸였다. 미국의 억만장자 워런 버핏에 이어 프랑스 로레알그룹의 상속녀 릴리앙 베탕쿠르 등 유럽의 슈퍼리치(巨富)들도 스스로 세금을 더 내겠다고 나서고 있기 때문이다. 이런 움직임은 재정위기와 경기침체 타개책을 모색하고 있는 독일 이탈리아 오스트리아 스페인 등 유럽 각국으로 확산되고 있다. 그러나 일각에서는 "부자에게 세금을 더 부과한다고 빈부격차가 줄어드는 것도 아니고 경제활력만 떨어뜨릴 수 있다"(후안 카를로스 에스파다 포르투갈가톨릭대 교수)는 반론도 강하게 제기되고 있다.

◆유럽 각국서 부자 증세 목소리

독일 일간 프랑크푸르터알게마이네차이퉁은 지난달 31일 "미국에서 시작된 '부유층 증세' 논의가 독일 등 각국으로 확산됐다"고 보도했다. 독일 부유층 단체인 '부자 증세를 위한 부유층 그룹'은 성명을 내고 "세금을 더 내지 않는다면 금융위기가 나라 전체를 흔들지도 모른다"고 주장했다. 그들은 부유층이 2년간 5%의 세율로 '부자세'를 내면 1000억유로의 추가 조세수입을 거둘 수 있다고 설명했다.

독일 함부르크 지역 해운사 경영자와 보험사 소유주,유명 팝가수 등 4명의 백만장자들도 주간 '디차이트'를 통해 '부자 증세'에 찬성한다는 입장을 공개적으로 밝혔다.

야당인 사회민주당은 이를 입법화하기 위한 작업에 들어갔다. 지그마르 가브리엘 SPD 대표는 "연간 10만유로(1억5000만원) 이상 고소득자 소득세율을 현행 42%에서 49%로 높이고,연수입 25만유로(3억8000만원) 이상 초고소득자에겐 추가적인 부자세(Reichensteur)를 부과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프랑스 이탈리아 스페인 등도 부자세 카드를 만지작거리고 있다. 프랑스에서는 베탕쿠르 로레알그룹 상속녀가 "프랑스와 유럽이 재정적 어려움에 처했을 때 국가에 기여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라며 부자세 논쟁에 불을 지폈다. 프랑스에서는 2013년까지 연간 50만유로(7억6000만원) 이상을 버는 고소득층에 한시적으로 3%의 세금을 부과하는 방안이 논의되고 있다. 루카 디 몬테제몰로 페라리 회장이 "세금을 더 낼 의향이 있다"고 말한 뒤 이탈리아 정부도 '부자세' 도입을 검토하고 나섰다. 스페인 정부는 3년 전 폐기처분한 부유층 과세를 재도입하는 방안을 고심 중이다.

◆"부자 쥐어짠다고 문제 해결 안돼"

그러나 이 같은 부자 증세 논의에 대해 부정적 시각도 적지 않다. 독일 일간 디벨트는 "부자들이 앞다퉈 '세금을 더 내겠다'는 매우 낯선 시대를 맞이했다"며 "부자세가 상징성은 클지 모르지만 국가 재정 문제를 개선하는 데는 거의 효과가 없다"고 지적했다.

포르투갈 일간 푸블리코는 "세금은 사회 전체의 경제 상황을 개선하는 주요 수단이 될 수 없다"며 "유럽은 부자에 대한 과세가 아니라 경제주체들에게 자유를 부여해 잘살게 됐는데 부자 증세로 경제 동력이 상실될지도 모른다"고 경고했다. 영국 일간 가디언 역시 "거부들의 박애정신과 자애로움을 의심하진 않지만 부자 증세가 기대하던 결과를 낼 수 있을지는 별개의 문제"라며 "부자를 쥐어짜는 것으로 빈부격차를 줄일 수는 없다"고 주장했다. 독일 슈피겔도 "부자세 논의는 포퓰리즘적 성격이 분명히 있다"고 비판했다.

김동욱 기자 kimdw@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