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장규모 5조원 미만은 중소기업만 맡아야 한다. "(중소기업계) "이미 대기업이 진출한 업종은 적합업종에서 제외해 달라."(대기업계)

특정 업종에 대기업 진출을 제한하는 '중소기업 적합업종' 제도의 가이드라인 확정을 앞두고 대기업계와 중소기업계가 첨예하게 맞서고 있다. 양측은 29일 동반성장위원회 본회의에 각각의 의견을 건의안 형태로 제출키로 했다. 의견차가 크다보니 자칫 이날 합의를 도출하기 힘들 것이란 관측도 나오고 있다.


◆대기업 "중소기업 성장 말라는 얘기"

재계 관계자는 26일 "대기업들은 장류,두부,금형,PC조립 등 이미 대기업이 진출해 있는 업종은 적합업종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입장을 확정했다"고 말했다. 이들 업종을 선정하게 되면 관련 직원들을 구조조정해야 하는 등 부작용이 속출할 것이라는 우려에서다. 풀무원 같이 해당업종에서 창업해 성장한 업체들을 그 분야에서 내쫓는 게 상식적으로 맞지 않다는 논리다.

과거 중소기업 고유업종으로 지정됐던 업종도 적합업종에서 제외해야 한다는 게 대기업 측 주장이다. 대기업 관계자는 "고유업종으로 지정했던 품목은 최장 27년간 보호를 받아왔다"며 "그런데도 적합업종으로 다시 지정해달라는 것은 자생력을 갖추지 못했다는 얘기"라고 지적했다. 고유업종은 1979~2006년까지 강제적으로 특정품목의 대기업 진입을 막았던 제도로 최대 237개 업종이 지정됐었다. 당시 중소기업 구조고도화를 지연시키고 수입품목 비중을 늘린다는 비판이 제기돼 결국 폐지됐다.

대기업 측은 이 밖에 조달청 납품 대상인 '중소기업 간 경쟁품목'도 적합업종에서 제외해달라는 내용을 동반성장위에 건의키로 했다. 이미 조달청에 납품하는 특혜를 누리고 있는데 적합업종으로 지정되면 이중 보호라는 얘기다. '대기업 범위를 어디까지 둘 것인가'를 놓고는 업종에 따라 탄력적으로 적용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중소기업 "적합업종 범위 더 넓혀야"

중소기업계 대표들은 이날 간담회를 열고 적합업종 범위를 넓혀달라는 건의를 동반성장위에 전달하기로 했다. 동반성장위가 정한 1조5000억원의 상한선을 3조~5조원까지 확대해야 한다는 내용이다. 중소기업중앙회 관계자는 "2조~4조원 규모의 주조,열처리 등 뿌리산업은 지난 50여년간 중소기업이 주도해 왔으나 오히려 상한기준에 걸려 품목에서 제외되는 모순이 발생하게 됐다"고 말했다.

중소기업계는 또 시장 규모 5조원을 넘는 금형 등은 세부업종으로 나눠 일부는 적합업종으로 지정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자동차 금형,휴대폰 금형 등은 대기업이 맡을 수 있도록 하되 시장규모가 작은 제품의 금형은 적합업종으로 지정하는 방식이다.

중기중앙회 측은 "시장 규모는 수시로 변할 수 있는 사안인데,일정 기준보다 규모가 크다고 해서 일방적으로 제외하는 것은 옳지 않다"며 "다양한 요소가 반영되도록 개선안을 요구할 것"이라고 설명했다.

대기업 범위와 관련해서는 동반성장위원회가 정한 1안대로 '제조업 기준 300인 이상 기업'은 대기업으로 봐야 한다는 의견을 내놨다. 2안인 '자산 5조원 이상 상호출자제한 기업집단'으로 정할 경우 여기에 해당되지 않는 일부 대기업들에 오히려 혜택을 주는 꼴이 될 것이라는 게 중소기업계의 판단이다.

◆가이드라인 29일 통과 여부 불투명

동반성장위는 27일 실무위원회를 열어 안건을 협의한 뒤 29일 본회의에 상정해 통과시킨다는 계획이다. 실무위원회 간사를 맡고 있는 김세종 중소기업연구원 연구위원은 "어느 정도 산통은 있겠지만 지금까지 조율을 통해 이미 상당 부분 진척을 이뤄낸 만큼 29일에는 합의가 이뤄질 것"이라고 말했다. 하지만 대 · 중소기업 간 입장차가 크다보니 통과가 연기될 가능성을 배제할 수 없다. 이 경우 5월 중 중소기업들로부터 적합업종 대상을 신청받아 확정한 뒤 6월께부터 적용한다는 일정이 전체적으로 미뤄지게 된다.

중소기업 적합업종은 과거 중소기업 고유업종과 달리 법적 강제 의무는 없다. 정부는 이에 따라 대기업의 자율규제를 유도하되 여러가지 제도를 이용한 압박을 검토하고 있다. 우선 이들 업종을 중소기업 이양공고 업종으로 공표한 후,대기업의 동반성장지수를 발표할 때 이를 지키지 않은 대기업에 감점을 주는 방안을 추진하고 있다.

고경봉 기자 kgb@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