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마간산으로 스쳐지나 갈 것이 아니라,이번에는 스위스를 제대로 보고 싶었다. 아름다운 자연을 어떻게 가꾸며 오늘의 풍요로움을 일구었는지 알아내고 싶어,지난 여름 휴가를 틈타 스위스 여행길에 나섰다. 열흘 동안 이름난 관광명소는 물론 도시와 산속 마을 이곳저곳을 다녀보니 감탄이 저절로 나왔다. 부러울 정도로 구석구석이 깨끗하고 샘이 날 정도로 모든 것이 잘 다듬어져 있었다. 보존할 것은 보존하되,개발이 필요한 만큼만 손을 대어 전혀 거슬림이 없었다. 자연이 주는 혜택을 최대한 누리며 그 속에 포근히 안기는 그런 모습이었다.
한반도 5분의 1밖에 안 되는 좁은 면적에 그것도 70%가 산이라고 하더니,과연 높고 험악한 산세가 국토의 많은 부분을 차지하고 있었다. 그러다 보니 해발 2000m까지를 주거지역으로 정해놓고 정부에서 상하수도,전기,대중교통을 보장해 준단다. 그런 환경에 적응하며 나름대로 먹을거리도 확보하고 삶의 터전도 마련한 것이다. 거기에서 한걸음 더 나아가 그 척박한 환경을 상품화해 오늘날 관광대국으로 발전시켰다.
여행 중에 이런저런 자료를 찾아보니,그 사람들의 지나온 궤적이 어렴풋이나마 보였다. 유럽의 다른 국가들이 산업혁명으로 한창 재미를 보고 있는데도 국내에 산업다운 산업이 없어,외국에 용병으로 나가는 게 외화벌이 수단이었던 스위스 사람들로서는 절박함을 느꼈을 것이다. 마침내 척박하지만 아름다운 자연을 상품화하는 것이 살 길이라는 데 눈떠,산 위에까지 선로를 깔고 톱니바퀴 열차를 개발하는 등 기초 인프라 구축에 나섰다고 한다. 말할 것도 없이 용병들이 벌어온 외화가 밑천이 됐기에 가능했으리라.
용병이 벌어온 피를 판 대가가 오늘날의 스위스가 있게 한 밑거름이 됐다는 기막힌 이야기다. 송출된 용병은 소속된 나라가 다르면 서로 죽이는 상황까지도 있었을 것이다. 이들의 혼을 달래기 위해 루체른 시내 공원에 세워진 '죽어가는 사자'라는 조각상 앞에서,하염없이 눈물만 흘리다가 돌아가는 스위스 사람들이 많은 이유를 이해할 수 있었다.
여행에서 돌아와 보니,국토의 균형발전을 떠들면서도 수도권에 전 인구의 절반이 모여 사는 우리의 현실이 더욱 답답하게 느껴졌다. 최근 들어 스위스로 여행하는 사람이 늘고 있는 건 다행이지만,현재의 모습만 볼 것이 아니라 그들의 지나온 삶을 깊이 성찰해 봐야 하지 않을까. 자연이 주는 혜택을 개발이라는 명목으로 뭉개버리는 데 익숙한 우리들로서는,한시 바삐 스위스 배우기에 적극 나서야 할 것 같다. 내년 여름에도 다시 스위스에 가보고 싶다.
문영호 < 법무법인 태평양 변호사 yhm@bkl.co.kr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