네 남녀 불륜 그린 '참을 수 없는', 이혼녀의 러브스토리 '불량남녀'
그런데 지흔은 '왕재수'로만 여겼던 경린의 남편에게서 의외의 매력을 발견한다. 이 즈음 경린은 남편의 직장 후배(김흥수)와 불륜에 빠져든다. 누구나 부러워하는,안락한 결혼 생활이 그녀에게는 따분한 감옥살이다.
상영 중인 권칠인 감독의 '참을 수 없는'은 네 남녀의 사랑과 결혼을 감각적으로 그린 로맨스영화다. 극중 네 남녀에게 결혼의 의무감은 희박하다. 불륜의 쾌감이 오히려 사랑처럼 느껴질 정도다. 이혼의 아픔조차 진정한 사랑을 찾기 위한 통과의례 같다. 네 남녀가 파트너를 바꾸는 과정은 자연스럽게 묘사됐다는 평가다. 이 과정에서 누구도 크게 다치지 않는다. 오히려 자신의 참모습을 찾았다는 안도감이 지배한다.
영화는 사랑한다고 무조건 결혼할 수 없는 현실도 담아낸다. 극중 지흔과 경린의 남자친구들은 경제적인 문제로 결혼할 엄두를 내지 못한다. 사랑과 결혼이 계급화된 세태를 반영한 것이다. 평균 세 쌍 중 한 쌍이 이혼한다는 우리 사회의 결혼 풍속도까지 함축한다.
권 감독은 "극중 추자현이 처음에는 친구의 불륜을 막으려 하지만 나중에는 자신도 그런 상황에 빠져든다"며 "관객들에게도 진정한 사랑과 결혼이 무엇인지 묻고 싶었다"고 연출 소감을 말했다.
다음 달 4일 나란히 개봉하는 로맨스영화 '불량남녀'(신근호 감독)와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임순례 감독)도 결혼을 경험한 여주인공들이 새로운 사랑을 찾아가는 이야기다. 미혼 남녀들을 전진 배치했던 예전의 로맨스물과 다르다. 여주인공들은 과거의 결혼 경험으로 새 삶을 설계하는데 조금도 위축되지 않는다. 오히려 예전보다 이해심이 넓어졌고 행동도 적극적이다. 20세기 한국 영화에서 불륜의 여주인공들이 심적으로 위축되고 현실에서도 '응징'받았던 패턴과 대조적이다.
'소와 함께 여행하는 법'은 소를 팔러 집을 나선 선호(김영필)가 7년 전 헤어진 여자친구 현수(공효진)의 전화를 받으며 겪게 되는 이야기다. 현수는 그녀의 남편이자 선호의 친구였던 민규의 죽음을 알리며 장례식장에 와달라고 한다. 다시 만난 두 사람 사이에는 "넌 아직도 내가 용서가 안 되니?"(현수) "네가 밉다"(선호)는 말이 오간다. 무슨 사연이 있었을까. 이에 대해 영화는 친절하게 설명하지 않는다. 대신 카메라는 두 사람의 현재 모습을 포착하는데 주력한다.
선호는 분노로 괴로워하지만 정작 현수는 무덤덤하다. 죄책감도 거의 없다. 오히려 선호가 과거의 기억을 잊고 현재의 자기 마음을 제대로 바라보기를 바란다. 선호의 모진 말도 넉넉하게 받아들일 만큼 성숙해졌다. 그녀는 과거의 선택에 대해 후회하지 않는 쿨하고 담담한 여성상을 제시한다. 공효진의 자연스러운 연기로 더욱 설득력을 얻는다. 그녀를 향한 사랑이 조금씩 살아나는 모습은 선호가 소를 팔려다 중단하고 집으로 데려오는 장면과 맞물려 있다.
'불량남녀'는 친구의 빚 보증을 잘못 섰다가 거액의 빚을 떠안게 된 강력계 형사와 독촉 전문 카드사 상담원이 벌이는 코믹극이다.
상담원 역의 엄지원은 틈만 나면 형사 역 임창정에게 빚을 갚으라고 전화한다. 범인을 검거하려는 찰나,전화 벨이 터지는 바람에 임창정은 거의 신경쇠약 직전이다. 그녀가 독종녀로 변한 까닭은 전 남편의 빚보증으로 집안이 몰락했던 이력 때문.두 사람은 티격태격 와중에서 거리를 좁힌다. 그녀의 결혼 경력은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영화평론가 강유정씨는 "이혼이 만연한 사회 풍조에서 30대 관객을 겨냥해 만든 영화들"이라며 "요즘 대중문화에서는 가부장제에 반대하고 불륜을 도덕적으로 비난하지 않는 게 세련되고 쿨한 감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고 말했다.
유재혁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