은행 증권 보험 등 주요 금융회사들이 퇴직연금 상품의 보장금리를 연 5% 이내에서 제시하기로 자율 결정해 금융당국에 통보했다. 연 7~8%대 금리를 제시하는 등의 과열 경쟁을 자제하도록 금융당국이 강력히 유도한데다 금융권에서도 '제살깎기식' 고금리 경쟁이 공멸을 부를 것이란 위기감이 확산됐기 때문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1~2년 정도는 금리 경쟁이 수그러들겠지만 음성적인 리베이트가 등장할 가능성도 있다고 보고 있다.

◆퇴직연금 보장금리 4%대로 급락

10일 금융감독원에 따르면 국민은행 신한은행 대우증권 삼성증권 삼성생명 대한생명 교보생명 등 52개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관련 상품의 보장 이율을 연 5% 이내에서 억제하겠다는 내용의 내부통제 기준을 지난 주말 금감원에 제출했다.

앞서 금감원은 지난달 초 혼탁양상으로 치닫는 고금리 경쟁으로 인한 금융시장의 위험을 줄이기 위해 금융회사별로 내부통제 기준을 마련할 것을 요구했다. 기대수익률 등을 감안해 손실 위험이 없다고 판단되는 금리 수준을 정하고,그 이상의 원리금 보장 상품을 판매할 때는 각사 리스크관리위원회의 사전심사를 받도록 지시한 것.

이에 따라 52개 퇴직연금 사업자들은 대부분 연 4.5~4.9% 수준의 금리 기준을 제출한 것으로 관측된다. 금감원 관계자는 "일부 중소형사를 제외하면 대부분 정기예금이나 국고채 금리에다 일정 수수료를 더한 합리적인 금리산정 기준을 마련했다"고 말했다. 업계의 한 관계자는 "금융당국의 시장정화 의지가 워낙 강경한데다 고금리 경쟁 폐해에 대한 공감대가 확산돼 국민 · 신한 · 우리은행과 삼성 · 대우증권,삼성 · 교보생명 등 대형사들은 연 4.5~4.6%를 제시했고,지방은행이나 중견 보험사,현대 · 동양 · 대신증권 등도 대부분 연 5%를 넘지 않는 이율을 적어냈다"고 전했다.

금융권역별로 제시한 보장금리의 차이도 크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금감원 관계자는 "은행권에 비해 신용도가 떨어지는 증권 보험사들이 고금리를 제시하려는 움직임이 있었지만 통보해 온 기준을 보면 그 차이가 0.1%포인트 정도에 불과한 것으로 판단된다"고 말했다.

◆금리경쟁 1~2년간 잠복할 듯

이번 조치로 연 7~8%대에 달하던 퇴직연금의 보장금리는 4%대 후반으로 3~4%포인트 급락할 것으로 전망된다. 퇴직연금 사업자들로서는 시장금리를 초과하는 대규모 역마진을 줄일 수 있게 된 것이다.

내부통제 기준을 자율 결정한 만큼 당분간은 금리 경쟁이 자제될 것으로 보인다. 업계 관계자는 "리스크관리위원회는 사외이사 등 외부인이 다수를 차지해 위험을 무릅쓴 고금리 상품을 승인해 줄 가능성이 매우 낮다"며 "과도한 금리에 대해 금감원이 조사를 공언한 상황이라 이를 정면으로 거스르기도 어렵다"고 말했다.

하지만 금리 경쟁 자제가 '풍선효과'로 나타나 또다른 불건전 행위를 자극할 것이란 우려도 나온다. 업계 관계자는 "리베이트 제공이나 '꺾기' 사례가 빈발할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금융위원회 관계자는 "건전한 서비스 경쟁을 유도하기 위해 태스크포스팀을 만들어 대책을 마련 중"이라며 "상반기 중 제도 개선 방안을 마련한 뒤 오는 7월부터는 노동부 등과 본격적인 협의에 들어갈 계획"이라고 설명했다. 금감원도 "법률 개정과 별도로 시행 가능한 추가조치를 검토해 상반기 중 제시할 방침"이라고 말했다.

백광엽 기자 kecorep@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