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용 없는 성장과 사교육 확산으로 부모의 경제적 지위가 자녀에게 이전되는 '부(富)의 대물림' 현상이 갈수록 심해질 것이란 분석이 나왔다. 가난한 집안의 자녀가 상위 계층으로 이동하기가 앞으로는 어려워진다는 것이다. '개천에서 용난다'는 말이 갈수록 통하지 않는 사회가 된다는 지적이다.

한국개발연구원(KDI)은 29일 '세대간 경제적 이동성의 현황과 전망'이란 보고서를 통해 이 같은 분석 결과를 내놨다. 보고서에 따르면 한국 사회는 아직까지 '부의 대물림' 정도가 외국에 비해 심각하지 않았다. 부모세대의 경제력에 관계없이 노력 여하에 따라 자녀세대에서 상위계층으로 올라갈 수 있는 통로가 열려 있다는 얘기다.

1998년부터 2007년까지 10년간 941가구를 조사한 결과 한국의 경우 저소득 가구에 비해 임금이 두 배 많은 고소득 가구의 자녀는 저소득 가구의 자녀보다 임금을 14.1%더 많이 받았다. 반면 브라질은 같은 조건에서 고소득층 자녀의 월평균임금이 58%,영국은 45%,미국은 37%가량 높게 나타났다. 부모세대와 자녀세대의 경제적 지위 변화도 외국에 비해 활발했다. 부모-자녀세대의 경제적 지위가 그대로 대물림되는 비율은 약 30%였고 자녀세대의 경제적 지위가 부모세대에 비해 높아지거나 낮아지는 비율은 70%였다. 김희삼 KDI 부연구위원은 "한국에서 경제적 지위와 관계없이 계층간 이동이 활발한 이유는 지금까지 자녀교육을 통해 신분상승을 이루는 사례가 많았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그러나 앞으로는 이 같은 세대간 경제적 지위 변화가 줄어들 것으로 KDI는 전망했다. 김 부연구위원은 "고용 없는 성장으로 일자리가 줄어들면서 부모세대의 경제력 차이가 더 커지는 데다 사교육이 급증하면서 부모의 경제력에 따른 자녀교육의 질적 차이가 확대되고 있다"며 "부동산 등 자산가격 급등으로 자녀에게 증여나 상속을 통해 부를 대물림하는 사례도 급증하는 추세"라고 지적했다. 상위계층에 속하는 가정의 자녀가 질 좋은 사교육을 받으면서 명문대학에 진학하는 비중이 늘어나고,이에 따라 부모세대의 경제력 차이가 자녀세대에서도 그대로 재연된다는 얘기다.

KDI는 '부의 대물림' 확산과 이에 따른 경제적 지위 이동 가능성이 낮아질 경우 사회 갈등을 증폭시킬 수 있다고 지적했다. 이에 따라 공적 장학금을 확충해 저소득층 자녀에게 교육받을 기회를 늘리고 유아교육 단계에서부터 경제력에 따른 교육의 질적 차이를 줄이는 대책이 필요하다고 강조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