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옹진군 덕진면 울도앞바다 1894년 침몰 고승호 발굴

‘서해안 침몰선에 실려있는 시가 최소 2조원이 넘는 은냥(작은 덩어리형태의 은괴) 600t과 은화를 이번에는 건져올릴 수 있을까’

지난 2001년 한차례 발굴을 시도해 선박과 매장물의 존재가 확인됐던 서해안 침몰선 ‘고승호’에대한 발굴작업이 대대적으로 재개될 예정이어서 서해안 울도앞바다가 술렁이고 있다.

고승호는 지난 2001~2002년 (주)골드쉽이 주관한 매장물 인양작업에서 은괴와 은화를 포함 약 1800여 점의 매장물이 건져올려졌었다. 당시 인양작업은 국내에서 개인기업이 해저매장물 발굴승인을 획득, 사업을 시도해 출토물 인양에 성공한 첫 케이스여서 세간의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었다.

2001년에 진행된 고승호 발굴은 자본을 댔던 모 건설회사가 유물인양에는 관심을 두지 않은 채 ‘보물선효과’를 노린 주가조작 사건에 휘말려 아쉽게도 인양작업이 중단돼 제한된 물량의 매장물만 인양하는데 그쳐 아쉬움을 남겼었다.

그러나 고승호에서는 은냥과 은화 이외에도 금·은수저, 소총, 아편 파이프, 도자기 파편, 와인병, 맥주병 등 수많은 부장품과 배에 타고 있다가 졸지에 바닷속에 생매장된 청나라 병사로 추정되는 유골 수십구도 함께 발견돼 관심을 모았었다. 당시 인양된 유물들의 일부는 현재 인천시립박물관 등에 보관돼 있다.

고승호는 인천시 옹진군 덕적면 울도 서남방 약 2㎞ 지점, 수심 25· 아래 모래와 진흙 뻘속에 묻혀있는 길이 76m의 영국국적 화물선이다. 배의 제원은 폭 11.89· 높이 7.4· 2134t급으로 청일전쟁 당시 청나라가 영국에서 임대해 조선으로 군수물자를 운반하던 중 1894년 7월 25일 일본 군함의 어뢰공격을 받고 격침됐다.

침몰당시 배에는 청나라 병사 1220명이 타고 있었고 은냥과 당시 국제통화였던 멕시코제 은화, 말발굽 형태의 마제은 등 600t이 실려 있다고 전해지고 있다.

고승호는 싣고 있던 화물의 특수성때문에 침몰된 이후 세인들의 관심을 벗어날 수 없었다.

일제 강점기 일본인 기업가들은 고승호의 영국인 선장 및 승조원, 청나라 지휘관들을 취조한 법무관의 기록과 영국 로이드 보험사에 등재된 자료 등을 근거로 고승호 인양작업을 수차례 시도했다.

특히 1935년 시도된 인양작업에 대해서는 당시 동아일보가 사고의 배경과 적재된 화물에 대해 자세히 기록하고 있다.

동아일보 1935년 2월 24일자에는 ‘해저에 든 3천만원 은괴, 4~5월에 인양작업’이라는 제목아래 “3천만원의 시가를 가진 은괴가 바다속에서 구원의 손길을 기다리고 있으며 또 그 구원작업이 착착 진행중이라는 귀가 띠우는 이야기”라고 소개하며 “고승호는 영국소유 상선으로 청국 임대권으로 보증금 4만 파운드를 걸고 사용한것이라는 바 로이드북이라는 사기(史記)에 의하면 이 병선은 멕시코은과 마제은 합하야 5백톤(현 시가로 환산하면 3천만원), 병정과 무기를 만재하고 명치 27년 7월 21일 중국을 떠나 동 23일 인천에 와 동 25일 드디어 인천항으로부터 서남 40마일의 지점에 있는 울도의 남방 동경 126도 북위 37도의 지점에 침몰되었다”고 보도하고 있다.

상당한 수준의 발굴성과를 올렸던 2001년 탐사이후 주변여건이 여의치 않아 발굴작업은 이어져오지 못했다.

그러나 최근 충남 보령소재 해저탐사 전문업체인 (주)바다사랑의 편도영 대표(54)가 미국 투자은행인 밀러 벅파이어(Miller Buckfire)의 창업자 가운데 하나인 헨리 밀러(a(Henry Miller)씨와 500만 달러 상당의 투자협약을 맺어 활기를 띠게 됐다.

밀러 벅파이어는 100개 이상의 고객회사들과 거래하면서 약 2100억 달러 규모의 채무구조조정, 거래가치 150억 달러 이상의 인수합병 자문 및 410억 달러이상의 자금조달업무를 수행한 바 있는 유수의 투자은행이다.

외국자본가와 손을 잡은 것은 국내에서는 그동안 해저 침몰선 발굴 사업이 성공한 사례가 없어 투자자와의 연결이 쉽지 않은 실정이기 때문이다.

지난 1999년에도 ‘울릉도 보물선’이라 불렸던 ‘돈스코이호’탐사가 진행됐으나 수심이 450· 이상이어서 인양작업이 어려운데다 당시 돈을 댔던 동아건설이 자금부족으로 중단한 바 있다.

우리나라의 경우 단 한차례의 성공사례도 없었다는 점에서 일확천금식의 바닷속 보물인양 시도들에 대한 부정적 인식이 널리 퍼져 있는 것도 사실이다.

그러나 외국의 경우 침몰선 인양작업이 매장물의 문화적 역사적, 그리고 경제적 가치를 재조명하는 고부가가치 사업으로 인식되고 있다.

서해 안면도에서 태어나 수산대학을 졸업하고 해저탐사 등 평생 바다를 터전으로 살아온 편 대표는 지난 2001년 탐사때 매장물 인양업체 대표로 해저현장에 직접 들어가 유물들을 건져올린 장본인이기도 하다.

그는 “침몰선 안에서 후드펌프로 건져올린 작고 시커먼 고철 알갱이들이 처음에는 납찌꺼기인줄 알았다가 오래돼 변색된 은괴임을 확인한 순간 벅찬 감동을 잊을 수 없다”고 술회하고 “2001년 발굴에서는 배의 갑판부분 5분의 1가량밖에 손을 대지 못했다”고 밝혔다.

편 대표는 지난해 말 고승호 인양과 관련, 해당 관청의 제반 허가절차를 밟아 인천지방 해양항만청으로부터 정식으로 고승호 매장물발굴 승인서를 획득한 상태다.

그는 “그동안 우리나라의 경우 해저탐사 사기사건이 많아 탐사준비에 어려움이 많았다”며 “고승호 재발굴 사업은 이미 매장물의 존재가 확인된 바 있어 투자가 이루어지는 즉시 그간의 완벽한 준비를 바탕으로 빠르면 1~2개월내에 가시적 성과를 낼 수 있다”고 자신했다.
고승호에는 아직도 어떤 가치있는 유물들이 얼마나 많이 실려있나 확인되지 않았지만 ‘건져올리는 모든 유물이 돈’인 셈이다.

타이타닉호에 실려있던 100년된 와인이 1억원에 경매된 적이 있어 지하 창고에 들어있는 와인 등도 엄청난 가치가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아울러 실려있는 은 600t 가운데 상당량 포함돼 있을 것으로 추정되는 은화의 가치를 시가로 환산할 경우 침몰선의 가치는 8조~12조원이 넘을 수도 있다는게 회사측의 설명이다.

또 고승호 발굴이 예정대로 진행돼 유물인양에 성공할 경우 우리나라는 물론 중국 일본 영국 멕시코 미국 등 이해당사국들이 관련돼 있어 매우 흥미로운 국제적 이슈로 부상될 것으로 예상된다.

보령=백창현 기자 chbaik@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