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보영(30)이 데뷔 6년 만에 멜로영화에 처음 출연했다. 원태연 시인의 감독 데뷔작 '슬픔보다 더 슬픈 이야기'에서 시한부 인생을 사는 프로듀서 케이(권상우)의 연인 크림 역을 맡았다.

서울 삼청동의 한 카페에서 지난 6일 만난 그녀는 "연애 감정에 무딘 편이라 멜로영화는 그동안 기피했다"면서 "죽음을 앞둔 남자와 함께 살면서도 슬퍼하지 않는 독특한 캐릭터여서 출연을 결심했다"고 말했다.

"시나리오를 처음 읽었을 때도 너무 동화적인 이야기라는 느낌을 받았어요. 다행히 시한부 인생을 다뤘지만 감정을 폭발시키는 '신파'나 '닭살스런' 멜로가 아니었어요. 절제된 감정으로 풀어낸 것이 오히려 현실적으로 여겨지더군요. 제가 나이를 더 먹으면 멜로에 출연하기 어렵다는 생각도 들었고요. "

이보영이 맡은 크림 역은 케이가 죽기 전 다른 남자(이범수)와 결혼시키려는 여인이다.

고교시절,부모에게 버림받은 케이에게 역시 고아인 크림이 다가가 "너 혼자 살기에 집이 너무 크지 않니? 내가 같이 살아줄까?"라고 말하면서 맺어진 가족 같은 관계다. 두 사람의 관계는 줄곧 이런 톤을 유지한다. 다분히 비현실적인 설정을 극복하기 위해 자연스런 연기를 펼치는 데 주력했다고 한다.

"웃음소리에 대사가 먹히는 한이 있더라도 진짜처럼 느껴지도록 했어요. 또박또박 내뱉는 대사 대신 삼키면서 말하려고 했어요. 여배우로서 예쁘게 보이고 싶기도 했지만 집안 장면에서는 헝클어진 모습을 그대로 보여줬어요. 힘 빼는 연기를 익혔다고나 할까요. "

젊은 남녀가 한집에 살면서 벌어지는 에피소드가 많은 영화여서 촬영 현장에서 재미있는 일화도 있었다.

"권상우씨가 장난을 치고 약도 자주 올렸어요. 크림이 옷을 갈아입는데 케이가 들어와서 깜짝 놀라는 장면을 찍을 때였어요. 저는 짧은 잠옷이면 될 것 같은 데 원태연 감독님은 속옷 차림을 주장하는 바람에 한참 설전을 벌였죠.그런데 상우씨가 지나가다가 '에이,그 정도는 괜찮잖아?'라고 한마디 툭 던지는 거예요. 얼마나 약이 올랐겠어요. "

이보영은 청순하고 여성스러운 외모를 활용한 CF로 먼저 인기를 얻었지만 거침없이 솔직하고 경쾌한 캐릭터를 연기했을 때 더 빛났다.

어눌하지만 사랑 앞에서는 끈기와 용기를 보여줬던 드라마 '미스터 굿바이',일제강점기 보물을 차지하기 위해 사기꾼과 경쟁하는 도둑 역을 맡은 '원스 어폰 어 타임' 등에서 좋은 평가를 받았다.

그녀의 차기작은 미정이다. 두 남자의 사랑을 동시에 받는 이 영화에서처럼 자신의 캐릭터가 잘 살아있는 작품을 선택할 것이라고 했다. 11일 개봉.15세 이상.

글=유재혁 /사진=강은구 기자 yoojh@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