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성 새 경영실험 '독립&협의' 닻 올랐다
삼성그룹이 25일 전략기획실을 완전 해체하고 사장단협의회 운영방안을 확정,각 계열사 독립경영체제 가동을 위한 모든 준비를 마쳤다.
그동안 각사의 투자와 인사 등을 총괄했던 전략기획실이 사라짐에 따라 삼성은 내달 1일부터 '사장단협의회-각 계열사'라는 새로운 시스템으로 운영된다.
이로써 1959년부터 이어져온 '회장-전략기획실(옛 구조조정본부)-계열사 사장단'이란 삼성의 삼각편대 경영은 반세기 만에 종지부를 찍게 됐다.
일각에서는 삼성의 최대 강점으로 꼽혀온 '빠른 의사결정과 과감한 투자전략' 등이 각사 독립경영체제에서도 제대로 이뤄질까에 대한 우려도 제기되고 있다.
◆"경영쇄신안 완벽하게 이행"…'뉴 삼성' 스타트
삼성은 이날 전략기획실 해체에 따른 그룹 운영방안의 큰 틀을 제시했다.
임직원 인사,기획,재무 등 그동안 전략기획실이 맡았던 모든 기능은 앞으로 각사로 이관해 자율적으로 추진하되 그룹 차원에서 논의할 필요가 있는 사안들은 사장단협의회를 통해 협의한다는 것이다.
이를 위해 삼성은 사장단협의회를 주요 계열사 사장 40여명으로 구성하기로 했다.
사장단협의회에는 삼성전자와 SDI,물산,중공업 등 15개 상장 계열사 사장과 삼성에버랜드,생명 등 주요 비상장 계열사 사장들이 참여한다.
별도의 협의회 회장직은 두지 않기로 했다.
다만 이건희 회장 퇴진 이후 대외적으로 그룹을 대표하게 된 이수빈 삼성생명 회장이 회의를 주재하고 이 회장이 참석하지 않을 때는 이윤우 삼성전자 부회장이나 이기태 삼성전자 대외협력담당 부회장이 회의를 이끌기로 했다.
삼성 관계자는 "사장단협의회는 협의 기능만 있을 뿐 전략기획실처럼 구속력이 있는 결정 권한은 없다"고 설명했다.
이름 그대로 '느슨한 형태의 협의체'역할만 할 것이란 얘기다.
삼성은 그러나 그룹 차원에서 꼭 필요한 업무를 협의하기 위해 중복사업 조정과 신사업 발굴 등을 맡을 투자조정위원회와 '삼성'이란 통합브랜드 관리를 맡을 브랜드관리위원회 등 비상근 조직을 신설하기로 했다.
투자조정위원회는 이윤우 부회장이 좌장을,브랜드관리위원회는 이순동 사장이 좌장을 맡는다.
삼성은 이들 위원회와는 별도로 삼성전자와 삼성생명 등 두 회사에 시너지를 낼 수 있는 사업을 새로 추진하거나 중복사업을 조정하는 기능을 맡기기로 했다.
아울러 전략기획실 경영진단팀 인력 중 일부를 삼성경제연구소로 보내 계열사들에 대한 경영 컨설팅 기능을 맡도록 했다.
그룹 관계자는 "전략기획실이 맡던 기능 중 95% 이상을 각 계열사로 완전히 넘기고 5%의 업무만 사장단협의회를 통해 협의하게 되는 셈"이라고 설명했다.
◆독립경영체제 순항할까
삼성이 새로운 경영실험에 나섰지만 '각사 독립경영체제'의 미래에 대한 우려도 적지 않다.
이건희 회장 퇴진과 전략기획실 해체 등으로 사실상 그룹의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할 기구가 없어졌기 때문이다.
삼성의 한 관계자는 "삼성이 지난 20년간 초일류 기업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이 회장과 전략기획실이란 투톱 체제를 통해 경쟁업체보다 빨리 의사결정을 내리고 과감한 투자를 집행할 수 있었기 때문"이라며 "독립경영체제에서 1983년 반도체 사업 진출 등과 같은 결정을 내릴 수 있겠는가"고 반문했다.
각사 독립경영체제에서 있을 수 있는 '근시안적 경영'에 대한 우려도 높다.
이만우 고려대 경영학과 교수는 "과거에는 이건희 회장이 투자결정에 대한 책임을 졌지만 전문경영인은 과감한 투자를 할 수 없을 것"이라며 "전문경영인들이 10~20년 뒤를 내다보는 투자에 나서지 않을 경우 삼성의 경쟁력은 현저히 떨어질 수밖에 없다"고 지적했다.
주력 계열사가 외부 기업사냥꾼들의 먹잇감이 될 가능성도 다시 부각되고 있다.
가능성은 높지 않지만,각사 독립경영체제에서는 외부 위협에 강력한 경영 리더십 아래 체계적으로 대응하기가 어렵기 때문이다.
한 관계자는 "2005년 삼성물산에 대해 영국계 투기자본의 적대적 M&A 움직임이 포착됐을 때 그룹 차원에서 다른 계열사를 백기사로 동원하는 등 다양한 대책을 세울 수 있었다"며 "하지만 사장단협의회를 통해서는 이런 공동 대응이 어려울 수 있다"고 지적했다.
경제계에서는 "그룹 컨트롤타워가 없어지면서 삼성의 투자 위축이 우려된다"(이동응 한국경영자총협회 전무)는 우려도 나오고 있다.
이태명 기자 chihiro@hankyung.co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