尹桂燮 < 서울대 교수·경영학 >

새해, 대통령 선거의 해가 밝았다. 아직 후보가 정해져 있지는 않지만 국민의 이목을 끌기 위한 후보들의 노력은 백화제방(百花薺放)이다.

태평양 건너 미국의 최대 관심사는 단연 포퓰리즘인 듯하다. 다수당이 된 민주당이 인기영합주의적인 법안들을 들고 나왔기 때문이다. 하원의장이 된 낸시 팰로시는 최저 임금을 인상하고 부유층에 대한 감세(減稅) 조치를 철폐하는 한편, 연방 정부가 의료 업계에 압력을 넣어서 의약품 가격을 인하시킬 것을 요구한다. 일부 의원들은 자유무역협정에 제동을 걸고 있다. 무역협정을 체결할 때 엄격한 조건을 붙여서 주요 지지 기반인 노조가 불이익을 받는 일이 없도록 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이쯤되면 미국 경제인들이 잔뜩 긴장하는 것은 당연한 듯 보인다. 문제는 우리도 예외가 아니라는 데 있다. 정해년(丁亥年), 포퓰리즘은 우리 경제가 이제껏 경험하지 못한 새로운 장애물로 떠오를 것이다.

많은 이들은 올해 경제 성장의 장애물로 국제 환경의 악화를 든다. 브릭스(BRICs·브라질 러시아 인도 중국) 국가들의 도전과 원자재 가격의 인상, 그리고 미국 경기의 둔화에 따른 수출 시장 축소와 환율 압박 등이 골칫거리가 될 것이라는 얘기다. 하지만 이전에도 국제 경제 환경은 우호적이지만은 않았다. 국가신용도가 낮아 외국 차관조차 들여오기 어려웠다. 1970년대에는 두 차례에 걸친 오일 쇼크를 겪었다. 원유를 100% 수입해야 하는 우리에게는 최악의 상황이 벌어졌다.

또 다른 이들은 인구학적 위기(demographic crisis)가 올 것이라고 한다. 출산율 저하, 노령화 그리고 고급 두뇌의 유출이 성장에 압박을 가할 것이라는 얘기다. 연금 지급 등 비생산적(非生産的) 부문의 지출이 늘어나고 노동 적정 연령의 국민 수가 줄어들며 첨단 기술 개발에 필요한 인력 확보가 어려워질 것이라는 이유에서다.

그러나 이전에도 종류는 다르지만 위기가 있었다. 한때 우리나라는 출산율이 너무 높아서 경제 운용에 지장을 줄 정도였다. 고급 두뇌 유출도 처음 있는 일이 아니다. 정치적,경제적인 이유를 들어 유학을 마친 이공계 석·박사들이 귀국을 꺼렸다.

그렇기에 전례가 드물었던 위기는 포퓰리즘의 위기라고 할 수 있다. 민주화가 정착하면서 여·야 할 것 없이 "대가를 지불하지 않아도 혜택을 누릴 수 있다"는 터무니없는 약속들을 하고 있다. 보다 많은 '표'를 얻기 위해서다. 파이를 키우지 않고도 국민들 개개인에게 돌아오는 몫이 커질 것이라고 유혹한다. 합당한 책임과 의무를 수행하지 않아도 권리를 누리게 해주겠다고 속삭인다. 외부의 위협에 맞설 수 있는 '힘'을 갖추지 않고도 양보와 대화만 하면 평화가 보장될 것이라고 주장한다.

이런 공약(公約)에 수반하는 비용은 일단 당선이 되고 난 뒤 고민할 일이다. 어쩌면 영원히 고민하지 않아도 될지 모른다. 어차피 5년 단임제 아닌가? 국민들의 반발로 여소야대(與小野大) 현상이 일어나면 '대통령 당'을 만들어 의석수를 늘리면 그만이다. 임기가 종반으로 치달으면 공약을 이루지 못한 이유를 이전 정권의 실정(失政) 탓, 야당의 발목 잡기 탓으로 돌리면 된다. 다시 한번 집권을 하기 원한다면 장밋빛 미래를 약속하면 된다. 소요되는 비용은 차기, 차차기 정권이 짊어지면 될 일이다.

물론 그렇다고 민주화를 되돌릴 수도 없고, 되돌리려고 해서도 안된다. 산업화 못지 않게 민주화는 우리가 자랑스러워 해야 할 업적이다. 하지만 민주주의가 뿌리를 내릴 수 있게 하기 위해서라도 포퓰리즘이라는 골치 아픈 부산물(副産物)을 경계하지 않으면 안된다. 정치꾼들이 얄팍한 정치적 이익을 위해 경제를 망가뜨려서 국민들이 민주주의에 실망한 나머지 독재 정권이 다시 들어설 것을 기다리는, '민주주의의 자살'을 막을 수 있는 방법을 찾아야 한다. 이야말로 대선을 치를 2007년의 가장 중대한 화두(話頭)일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