安世英 < 서강대 교수·국제통상 >

미국과의 FTA 협상에 난기류가 흐른다. 지난주 미국 중간선거에서 공화당이 죽을 쑤어 야당인 민주당이 상·하원을 모두 장악했다. 친기업·개방주의적인 공화당과 달리 노조와 중산층에 정치적 기반을 둔 민주당은 평소 FTA를 밉상스럽게 보아왔다. 더욱이 한국과 FTA 협상을 시작할 때부터 드러내 놓고 눈살을 찌푸리던 낸시 펠로시 의원이 하원의장이 됐다. 민주당이 통상현안을 다룰 상·하원 핵심 위원장 자리를 차지하면 사사건건 정부 간 협상에 제동을 걸려 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이는 미국 정치1번지 워싱턴의 요즘 분위기를 잘 모르고 하는 우려다. 선거 후 민주당이 제일 먼저 내건 기치는 '초당적 협력(bipartisan)'이다. 앞으로 여소야대(與小野大)의 국정을 공화당 대통령과 손잡고 이끌어 나가겠다는 것이다.

민주당이 아무리 의회를 장악했다 하더라도 이라크 파병과 세금감면 같은 몇 개의 뜨거운 감자를 빼곤 백악관의 기존 정책에 마냥 칼날을 들이대지는 않을 것이다. 벌써 통상을 다루는 하원의 막강한 세출위원장을 맡게 될 랭글 의원은 공화당과 협력해 일해 나가겠다는 제스처를 보이며 슈왑 통상대표부(USTR) 대표와 통상문제를 협의하고 있다. 상원 재무위를 이끌 보커스 의원과 랭글 의원은 소위 말하는 '뉴-데모크라츠'(New Democrats)다. 구태의연하게 개방에 반대하는 올드-민주당이 아니라 바깥 세상 돌아가는 것쯤은 아는 트인 민주당 의원이란 말이다.

다행히 한·미FTA 협상의 수레바퀴는 계속 굴러갈 것 같다. 하지만 정부는 이번 중간선거로 달라진 미국의 정치판도를 잘 분석해 협상전략을 몇 가지 수정해야 한다.

지금까지의 네 차례 협상에서 탐색과 가지치기를 했다면 다음 달에 있을 5차 협상부터는 슬슬 '주고 받기 식' 딜을 할 것이다. 이때 같은 값이면 의회의 요직을 차지한 민주당 의원들의 입맛에 맞는 카드를 내놓아야 한다. 지역구 표밭이라면 사족을 못쓰는 것은 미국선량도 마찬가지다. 곡창지대인 캔자스 출신 밥 돌 의원이 상원 재무위원장 자리에 앉아 있을 때 곡물 수출은 미국 통상정책의 최우선 과제였다.

마찬가지로 목장지대 몬태나 출신의 보커스 재무위원장과 자동차 산지 미시간의 레빈 하원 FTA소위 위원장은 각각 쇠고기와 자동차에 초미(焦眉)의 관심을 보일 것이다. 다행히 쇠고기 수입은 풀리고 있는데,문제는 두 나라가 팽팽히 맞서고 있는 자동차 이슈다. 이번에 평소 개방을 외치던 공화당 의원들이 일리노이,미시간 등 소위 중서부 자동차공업지대에서 줄줄이 낙마했다. 이 지역 노동자들이 등을 돌린 것이다. 대신 보호주의 성향의 민주당 의원들이 의회에 들어갔으니 앞으로 자동차협상은 아주 어려워질 것 같다.

일부에서는 북한에 유화적인 민주당이 개성공단에 대해 호의적일 수도 있다고 기대한다. 이는 아전인수(我田引水)격 오산이다. 북핵의 위협과 대북제재의 필요성에 대해선 공화건 민주건 초당적이다. 세상 돌아가는 분위기를 알고 개성공단이 협상의 걸림돌이 되지 않도록 했으면 좋겠다.

또한 민주당이 무역촉진권한(TPA)을 절대 연장해주지 않을 것이라는 우려가 지배적이다. 세계화에 색안경을 쓴 민주당이 도하개발아젠다(DDA)를 마무리 짓기 위해 TPA를 연장해줄 가능성은 거의 없다. 하지만 잘 진행되는 한·미FTA 협상이 내년 3월 시간에 쫓겨 허덕거리면 민주당도 고민에 빠질 것이다.

한국과의 이번 협상은 미국으로서도 북미자유무역협정(NAFTA) 이후 가장 중요한 통상협상이다. 더욱이 북핵과 떠오르는 중국 경제를 생각할 때 7대 교역(交易) 대상국인 한국 경제를 FTA의 끈으로 묶어둘 필요가 분명히 있다. 미 의회로서도 절차적 시한 때문에 다 된 밥에 재 뿌리기는 부담스러울 것이다. 적당히 꼬리표를 달아 TPA를 연장해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미국 중간선거는 일부의 우려와 달리 우리에게 악재도 호재도 아니다. 지금으로선 흔들리지 않고 진지하게 협상을 해 우리의 국익을 최대한 반영시키는 성과를 만들어내는 것이 중요하다.